진심

by 홍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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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더 무라.”


“괜찮다. 배부르다, 할머니.”


몇 번을 배부르다고

그만 먹는다고 해도

어느새 내 떡국 그릇은 더 채워져 있었다.


“할머니 이거 맛있다. 드셔보세요.”


“됐다, 안 물란다.”


그렇게 당신의 빈 접시엔

거절 의사와 상관없이 회가 또 놓여 있다.


“목도리 이거 가져가라.”


“집에 있다. 할머니 해.”


집으로 올라가기 전부터 종이가방 안에 꽁꽁 숨겨둔

목도리.


“할머니, 이번에 조용필 선생님 콘서트 하신대. 같이 가자. 표 사놨어.”


“아이고, 안 갈란다. 몸이 안 좋다.”


그렇게 다시 팔게 된 티켓.



그렇다.

서로를 위한 마음은 늘 빗겨나갔다.

그리고 진심을

받지 않으려 한 적도 많았다.


한 날은 전화 너머,

집에서 넘어져 이빨이 부러졌다며

치과에 가서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던

당신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뒤이어

사실 넘어진 지는 며칠 전 일이었다는 말에

더 놀랐다.


놀랄까 봐, 걱정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넘기려 한 일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뱉어져야 할 말이 되어버렸을 때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건

오래된 습관처럼 되어버린

또 하나의 당신의 진심이다.


당신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였다.

그나마 다행히 가벼운 접촉 사고였지만,

연세가 많은 탓에

조금의 충격에도 안 됐을

당신의 여린 다리는 수술을 해야 했고,

의사 선생님은 입원을 권했다.


그때조차

내가 아니라

친척들에게 먼저 의지하려 했다.

친척들이 입원하라고 하면

그때 하겠다는 말에

20대의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보다는

그 누군가가

당신의 보호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게 늘 서운했다.


나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일 거라

생각하고 또 생각했지만,

이상하리만큼 화가 났다.

정작 늘 옆에 있는 건 나인데.


내가 그렇게

못 미더운 사람인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어디가 아프다고 할 때면

대학병원이나 더 큰 병원에 가자고 말해도

사는 동네에서 이름까지 외운

의사 선생님을 믿으며

그 병원이 잘한다며 고집을 부렸다.


짐을 주는 것 같아서, 부담주기 싫어서

늘 하는 당신의 선택은

늘 당신을 위한 진심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내가 생각하고픈대로

듣고 느낀 게 아닐까 싶다.


듣고 싶은 대로만 들은 나는

그 너머에 닿지 못한 진짜 당신의 ‘진심’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류시화 작가님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잠언 시집에 실린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라는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것들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야

어찌 바라겠습니까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어느 17세기 수녀의 기도’는

중용의 미학을 아름답게 말하고 있다는

해석을 보았다.


무엇이든

양면 속에서의

적당한 거리,


내가 아는 당신의 모습은

아주 작은 한 조각에 불과하겠지만,

내가 아는 당신은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참다 참다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되었을 때,

혼자 끙끙 앓다가

어쩔 수 없이 꺼낸 많은 말들.


자신의 몸이 더 아프고, 힘들면서

늘 먼저 나를 들여다보고 보살피던 당신은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은

하나도 남겨두지 않는 적당함이 없는 사람이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저

당신이 아프면 짐이 될까 봐,

스스로를 위한 말이 아니었다는 걸.


얼른 떠나야

남아 있는 사람이

편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그렇다.

나는

그 사소한 위로 하나

건네지 못했다.


어렸을 적,

내가 배가 아파

잠들지 못한 채

칭얼대며 울던 여러 밤 동안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손은 약손…’


그 말을 되뇌며

배를 어루만져주던 때처럼.


그게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그저 민간요법이었는지는 몰라도

희한하게도

아픔은 조금씩 가라앉았던 것처럼.


‘손녀 손은 약손,

손녀 손은 약손…’


은 못할지라도


‘많이 아파? 아프지 마.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그 말 한마디에

낫지 않더라도

따뜻한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힘을 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당신과 나는

항상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건 아마

당신의 진심과

나의 진심이

서로에게 닿기까지

오래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쯤이면

당신의 진심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까.


언젠가

서로의 진심을

보고 싶은 대로,

듣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어렵다.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나에게 어렵다.


참 어렵다.


당신에게

사랑을 전하는 일이

여전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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