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의 종착역은 같다.
저마다 가는 길이 다를 뿐, 네 길을 가라는 말.
종착역에 닿는 시간이 다를 뿐이라는 말.
그리고 죽음이라는 것은
당신에게 있어서 아마 불청객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자연스러운 것.
그 자연스러움을 은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나 역시 그대로 배우게 된 듯하다.
영화에서도 벤자민 버튼의 친한 친구이자 인연이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그 사람을 떠올리며
그리움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이었다고 말하듯,
당신은 나에게 헤어짐의 의미를 가르쳐준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단연코
슬프지 않다거나,
이별에 익숙해졌다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당신은 외로움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주위에 하나 둘 소중한 인연들과 작별을 할 때에도,
아무도 없는 혼자인 집에서도,
당신은 적적하고도 고요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른처럼 보였다.
사실 난 오히려 그런 당신의 모습이 화가 났다.
그리고 무서웠다.
만날 때마다, 연락을 할 때마다
이별의 준비 같은 말을 듣는 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쉽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은 당신의 말을 오래 듣는 일이
나에겐 공포에 가까웠던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대화를 나는 피하기 일쑤였고,
듣고 싶은 대답을 바라며 말하는 것 같은 당신의 모습에
점점 지쳐갔다.
그런 감정이 불같이 타오르던 와중에 함께 맞이한 설.
설을 맞이해, 9년을 만난 내 사람과 나에게 줄 게 있다며
당신은 하얀 봉투 두 개를 내밀었다.
그 안에 든 건
항상 재활용해 쓰는 자그만 메모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듯한 편지와
20만 원의 세뱃돈이었다.
내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당신은
미리 나에게 읽어봐 달라고 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염려되는 마음에 하는 부탁이라는 걸 안다.
편지를 채 다 읽기도 전에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마지막 문장이었다.
‘영원히 못 잊을 할머니가’
어떤 기억들만큼은
가슴에 꼭 쥐고 가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내가 당신과 매우 닮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말로 전해지지 않아
충분히 오해를 만들 수 있는 감정들을
우리는 글로서 오히려 더 이해하게 된다는 사실도.
나는 그 조그만 편지에,
아니 그 한 줄에
몇 개월치 쌓인 오해와 응어리들이 풀렸다.
우리를 기억하고 싶어서,
당신을 더 알고 싶어서,
늦었지만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서
쓰는 글의 힘을 나는 계속 믿고 싶다.
하지만 사실 두렵기도 하다.
내 말 한마디, 내 목소리 한마디에
울고, 웃는 사람에게
여태껏 가장 허심탄회하게 표현한 이 글이
어떻게 닿을까.
닿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