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의 나는
겁이 많고,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에서 행사가 있어
친구들과 1박 2일을 보내야 하는 날이면
나는 늘 울며 당신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등교하곤 했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하나의 버릇이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보따리째 풀어
당신에게 쏟아내는 것이었다.
“할머니, 오늘은 말이야….”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
확실한 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당신을 웃게 해 보겠다고
애를 썼다는 것뿐이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100% 허구란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늘 활짝 웃으며
그 장황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당신의 웃는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내가 간직하고 싶은
몇 안 되는 기억의 조각 중 하나일 것이다.
해가 바뀔수록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다.
집은 이전보다 조용해졌고,
침묵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그게 나에겐 잔소리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어쩌면 내가 조용해진 이유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슨 말이라도 해주는 게 아닐까,
표현에 서툰 우리 사이에서
나보다 어른인 당신이
그나마 말을 건네준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왜 지금, 당신을 떠올리며 쓰는 이 글에서야
처음으로 떠오르는 걸까.
나는 그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싶다.
당신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당신이 간직하고 싶은
또 하나의 기억이 되고 싶다.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늘 보폭을 맞춰 주던 당신은
또래 아이보다도 작았던 나의 걸음을
느리게, 또 아주 느리게 맞춰주었다.
초등학교에 올라
내 키가 조금씩 자란 뒤에도
나는 여전히
당신의 손을 잡고
시장을 따라다녔다.
시험을 잘 본 날이면
돈가스를 사준다며
앞장서 걷던 그 손.
장 보러 갔다가
김밥천국에 들러
김밥과 우동을 사주겠다고 하던 그 손.
그리고 지금,
우리의 시간은
다시 반대로 흐르고 있다.
아흔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정정하지만
외출할 때면
당신은 내 손을 꼭 잡는다.
나는 당신의 보폭에 맞춰 걷고,
혼자서는 잘 챙겨 먹지 않을 걸 알기에
자주 외식을 하자고 말한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점점 야위어져 가는 게
해가 지날수록 느껴지는 그 손.
특히 영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이면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조심조심 넘어질까 봐 나의 손을 잡고
아주 천천히 걷는 당신 옆을 걷고 있을 때,
‘조금 더 서둘러 걸을 수 있다면
이 찬바람을 덜 맞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어린 기억 속에 당신은
단 한 번도 싫증 내지 않았다.
내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느린 발걸음에 맞춰주며
얼마나 수많은 겨울을 걸어줬을까.
그렇게 조심스레 잡아주던 그 마음 그대로
이제는 내가
그 야윈 손을 잡아주고 싶다.
찬바람을 같이 맞이하고 싶다.
앞으로도
그렇게
당신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