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죽는 게 수지타산 맞는 인생도 있는 거 아닌가?
선생님
저는 쉽게 억울하고 쉽게 흥분해요.
식칼을 빼들어 꽉 쥐었습니다.
내 몸을 난도질하고 배를 찌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하 던전의 마지막 단계 같았어요.
지금 죽어야 돼. 죽어야 되는 건가? 죽을까? 지금? 진짜? 나 죽나? 누가 나를 죽일까? 난 죽임을 당할 거야. 누군가 날 죽이려고 하는 느낌이 나.
처방받은 약과 비상약통도 탈탈 털어 보이는 약은 다 먹고 또 3일 내내 잤어요.
안 깨고 잠에 들어있고 싶었어요.
영원히 잠들길 바라면서요.
세상 사람들이 뭘 먹지도 잠을 자지도 옷을 입지도 않았으면 좋겠어요.
의식주가 인간의 생존의 필요조건이라니요.
최소한의 의식주를 갖춰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건데 그럼 저는 사람이 아니네요.
저는 오로지 생존 하나 겨우 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모든 인간에게 최소한의 욕구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이만큼 버텨 싸워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쥐고 있는 게 없어요.
목숨을 걸어서 지낼 곳을 구했는데 결국 내 몫은 모두 사라졌어요.
나는 목숨을 걸고도 더 걸 수 있는 게 없어서 그 부족함이 화살이 되어 나를 찌르러 돌아왔어요.
꽃마다 피는 시기가 다르다고 나는 조금 늦을 뿐 언젠가 활짝 펴서 빛을 발한다는 말은 철저히 그들만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말 같아요.
이미 뿌리부터 썩었대도 그저 존재하면 다 된다는 건가요?
아뇨. 피어날 꽃은 애초부터 꽃이 피기 딱 좋은 자리에 나요.
해가 잘 드는 곳에서 규칙적으로 부족함 없이 물이 주어지고, 죽기 직전엔 영양제 꽂아 줄 사람도 있을 거예요.
썩은 고목에서 나고 자라는 꽃은 피어나려 혼자 얼마나 치열해야 되나요?
아님 내가 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가정은 없는 건가요?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요.
이 고통은 사람 한 명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고통이라서요.
감내하면서까지 살고 싶지 않고, 강해지고 싶지도 않아요.
어떤 것도 의미가 없는 사람은요.
고통 없이 성장 없다면 다 포기하고 이 고통도 끝내고 싶어요.
그냥 현재의 나는 죽이고 싶고 해하고 싶은 충동에 충실해진 사람입니다.
왜 살죠?
어떤 스님이 그러셨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찾다 보면 죽어야겠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이유 없이 삶이 의무라니까 최선을 다해서 산 채로 남아있는데 살아있기 위해 드는 노력과 비용이 너무 적자야.
그럼 죽는 게 수지타산 맞는 인생도 있는 거 아닌가?
달콤한 자극이 필요해.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거나 잠을 안 잔다거나 어쨌든 몸을 혹사시키고 싶다.
앞으로 또 이번 달 나가야 할 돈 생각하면 죽고 싶다.
왜 해결해야 해? 문제를 해결하면서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가 뭐지.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은 잘 모르면서 다른 것들에겐 쉽게 사랑에 빠졌다.
아무리 대단한 걸 사랑해 봤자 아무리 무수히 많은 걸 사랑해 봤자 세상을 사랑하진 못했고 내 삶이 사랑스러운 적도 없었다.
결국 내가 날 사랑해야 한다.
진짜 귀에 딱지 앉도록 들은 말이 아닌가.
처음엔 잘 모르기 때문에 덜컥 사랑에 빠져버리고, 그다음엔 알면 알수록 깊게 빠지게 된다.
나는 이미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날 사랑하지 못하는 거야.
인간관계를 지속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가 없어지거나 단절할 이유가 생기면 인간관계가 끝난다.
나는 나 스스로 이유가 없는 거다.
나를 가장 잘 아는 나는 날 단절하고 싶으니까 자꾸 죽고 싶어 지는 거다.
근데 그냥 산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생각해서 죽기 전에 지금 곧바로 내 기분을 좋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
사랑을 해야 해.
주변에 좋은 사람을 두어야 한다.
나를 잃어버린 나는 주변에 너무나 잘 휩쓸리는 까닭이다.
나는 타인의 에너지와 사랑을 양분으로 삼아 좀 일어서기도 했다.
나는 미안하고 염치없게도 당신이 주는 양질의 양분이 필요한데, 내게 다 주어도 모자람 없는 건강하고 멋진 인간들은 내게 사랑이라는 이유로 조건 없이 양분을 준다.
지난 슬픈 관계들이 내 우울에 무게를 더 했고, 좋았던 관계는 그 무게를 덜어주었다.
영혼이 죽어본 적 없는 사람들이 왜 죽음보다 삶이 낫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
왜 내 숨을 정지하면 안 되는지, 왜 삶이 의무인지 난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해내고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일단 내 맘대로 산다.
내 맘대로 죽을 수 있다면 내 맘대로 살 수도 있는 거지.
당장 죽을 거 아니니까 굳이 매일을 지옥 속에서 살 필요는 없잖아.
인간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처럼, 날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날 놓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