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는 학원 건물을 나와 인도를 걸었다.
쓸쓸한 저녁 하늘 아래를 걸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최근 보던 웹소설을 습관처럼 띄운 뒤 읽어가며 걸었다.
웹소설을 읽는 동안 진호에겐 이 세상이 느껴지지 않았다.
근데 뭐 특별할 게 있겠는가.
현대인들에게 웹소설, 웹툰은 일종의 대피소이다.
스트레스받는, 따분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대피소…
그 세계에 사회적 메시지나 철학적 고찰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작품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도파민을 원했다.
***
진호는 활자 중독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웹소설 덕후다.
지금까지 본 작품 수만 해도 300편은 넘을 것이다.
정세랑 작가 소설의 대사처럼 진호는 읽다 보니 쓰게 되었다.
그는 웹소설 작가로서 낸 작품도 몇 개 있으며, 웹소설 출판사에서 직원으로 일한 적도 있었다.
현재는 주로 학원에서 웹소설 강의를 하며 남는 시간에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작가의 삶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웹소설과 동고동락하다 보니 어느새 나이는 30대 중반이 되었고, 연애와 친구 관계도 명맥이 거의 끊겨있었다.
그래서 진호는 사람을 사귀러 모임에도 나가봤지만, 애착이 가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웹소설 좋아하는 사람들 모임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앱에서 모임을 만들었다.
그렇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모임을 여니 사람들이 정모에 나왔고, 쿵 짝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날 때면 모임을 만들길 잘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모임은 이제 4개월 차가 되었고, 진호는 다음 달 모임에서 어디서 뭘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보드카페나 어디 공간을 빌려서 TRPG 게임을 하자고 할까? 아니면 메이드 카페를 가보자고 할까? 막창이 당기는데, 합정에 있는 막창집서 모이자고 할까?’
고민 끝에 진호는 마지막 안을 골라 앱에 모임 일정을 올렸다.
- 5월 6일 토요일 오후 5시 합정역 막창데이 -
- 참여 인원 1/8 -
다음 달이지만 지금이 월말이라 10정도 뒤의 일정이었다.
‘한둘이라도 나오면 조촐하게 놀다가 헤어지지, 뭐…’
그렇게 생각했지만, 혹시나 놓친 알람이 있을까 봐 진호는 수시로 앱을 켜 새로운 참석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 모임 날은 다가왔고, 참석자는 총 5명이었다.
하지만 점심쯤 회사 일 때문에 불참자가 한 명, 또 오후에 건강 이슈로 불참자가 한 명 추가됐다.
합정에 있는 막창집에서 진호는 구면인 회원과 초면인 신입회원을 맞이했다.
웹소설을 좋아한다고 그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최근 즐겨 읽는 작품부터 다양한 웹소설 이야기들이 오갔다.
이야기중 신입 회원이 진호에게 물었다.
“운영자님. 수업 들으러 어떤 분들이 많이 오나요?”
“아. 그게 말이죠…”
진호가 아무래도 현직 강사다 보니 웹소설을 쓰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의 이야깃주머니는 쉬지 않고 말들을 쏟아냈다.
그렇게 식사와 간단히 술을 마시고, 2차로 커피숍에 가서 좀 더 수다를 떨다가 회원들과 헤어졌다.
‘그래도 혼자 집구석에 있는 것보단 사람도 만나고 해야지.’
집에 도착한 진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유튜브를 보다 잠이 들었다.
***
사실 진호는 모임에 신규 회원이 잘 늘지 않고, 기존 회원도 유령 회원이 늘어가는 것에 대해 신경이 쓰였다.
‘좀 북적북적하게 모여서 놀면 좋을 텐데. 이제 5명 이상 모이는 것도 쉽지 않네…’
하지만 모임장으로서 또 개인적인 기대를 담아 새로운 모임 일정을 등록했다.
- 5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북카페 책과숲 -
- 참여 인원 1/8 -
모임에서 만났던 사람들은 과거의 진호처럼 웹소설을 한번 써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이미 작가인 사람도 꽤 있었다.
그래서 진호는 북카페에 모인 뒤 각자 웹소설 작업을 하고,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코스를 구상했다.
이번 모임은 반응이 꽤 좋아서 모임 전날까지 참석자 총 10명이었다.
잠들기 전 양치질하는 진호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
일어난 아침에 진호의 스마트폰에선 참석자가 8명으로 줄어 있었다.
자주 봤던 광경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진호는 할 일들을 해나갔다.
점심시간에 식사하러 가는 중 스마트폰을 보니 참석자가 6명이었다.
이것 또한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진호는 자신을 달랜 뒤 식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씻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해볼까 하는 진호의 스마트폰에 참석자 2라는 숫자가 보였다.
“아 씨발!”
진호는 앱을 켠 다음 모임 일정을 삭제했다.
또 모임도 그냥 삭제해 버렸다.
스마트폰을 바닥에 던질까 잠시 모션을 취하다, 푹신한 이불로 그것을 던졌다.
진호의 씩씩거림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때 웹소설이 스마트폰 액정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진호의 상태를 확인한 뒤 액정 아래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리고 속삭였다.
“재. 또 저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