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였던 영미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영미와 나는 회사에서 유일한 동갑이기도 했고, 영미의 발랄한 성격 덕분에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회사의 여자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누구 업무가 더 힘든지, 어떤 상사가 더 쓰레기인지 자웅을 겨루곤 했는데 그게 일종의 놀이이자 우리의 문화이기도 했다.
퇴근 후 우리는 자주 어울렸었는데, 내가 이직하면서 결국 관계는 뜸해졌다.
그렇게 약 2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오랜만에 영미가 연락이 와서 약속이 잡힌 것이다.
영미가 예약했다는 식당에 도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하나도 변하지 않은 모습에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영미야. 여기 원 테이블 식당인거야? 비싼 거 아님?”
“생각보다 비싸진 않더라. 나도 sns에서 보고 처음 와 본 거야.”
“그래. 여긴 근데 양식집인 건가?”
“양식도 있고, 한식도 있고. 그냥 여기 사장님 재량으로 메뉴가 바뀌는 거 같더라.”
“아. 그래.”
우리는 주인이 추천해 준 레드와인 두 잔과 크림치즈 파스타, 라자냐, 시금치 피자를 주문했고, 잡담을 나누다 보니 음식들이 전부 나왔다.
국룰대로 우리는 먹기 전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일단 파스타를 한입 들었는데 면의 식감이 살짝 딱딱하게 느껴졌고, 예상했던 풍성한 치즈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즐거운 자리니 그럭저럭 먹으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영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여기 맛집이네. 맛집!”
분명 나와 같은 파스타를 먹고 있는데 상반된 반응이었다.
‘그래. 사람마다 입맛은 다를 수 있지…’
나는 차마 별로라는 말은 하지 못하고 적당히 둘러댔다.
“입맛에 맞나보네. 다행이다.”
접시에 덜어 낸 파스타를 모두 먹은 영미는 시금치 피자 한 조각을 접시로 옮겼다.
피자의 옆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나도 시금치 피자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 나이프로 피자를 썰어냈다.
그때 영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음! 이거 웰빙한 맛인데 개 맛있어. 어서 먹어봐!”
나는 피자를 입속에 넣고 맛을 음미했다.
씹을수록 신선하지 않은 시금치의 향이 입안을 감돌았다.
시금치가 없었다면 그냥 동네 프랜차이즈 피자 느낌으로 만족했을 거 같은데, 씹을수록 고역이었다.
와인 한 모금과 함께 급하게 피자를 삼켰다.
‘재는 혓바닥이 고장 났나? 맛없는 음식을 왜 다 맛있다고 하는 거지?’
내가 와인을 시금치 피자를 삼키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 것과 달리, 영미는 시금치 피자를 먹은 뒤 와인의 향을 느끼며 천천히 삼켰다.
“이야. 이거 와인 존맛탱! 향이 되게 깊고 묵직하다. 완전 내 스타일!”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와인을 천천히 삼켰다.
향의 깊이나 묵직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와인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영미를 생각해 역시 적당한 대답을 했다.
“응. 맛있네.”
다행히 마지막 라자냐는 그래도 괜찮았다.
감칠맛 나는 토마토소스 맛이 잘 느껴졌다.
라자냐를 먹은 영미의 반응은 다들 알 것 같으므로 생략하겠다.
솔직히 음식은 완전 별로였지만, 영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분위기 메이커답게 영미의 대화와 농담은 멈출 줄 몰랐고, 서로 던지는 농담의 티키타카가 잘 맞았다.
그렇게 우리는 시간을 보낸 뒤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영미가 아까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린 걸 확인했다.
오랜만에 주은이랑 즐거운 시간!
여기 음식이랑 분위기 끝장남!
#맛스타그램 #맛집 #원테이블식당 #르스크레
스크롤을 내리니 영미의 sns에 칭찬으로 가득찬 세상이 펼쳐졌다.
원단이 훌륭한 옷, 쿠션감이 최고인 소파, 목디스크를 한 방에 없애주는 베개, 최고로 잘 가르쳐 주는 pt 선생님, 너무 훌륭하고 또 가고 싶은 여러 여행지들…
그 세상에 부정적인 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씁쓸함을 느꼈다.
왜 영미는 부정적인 감정을 부정하게 되었을까.
과연 자신을 끝까지 속일 수 있을까.
그게 만약 가능하다면 나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속임수는 영원할 리가 없다.
그리고 우정도 영원하지가 않지…
난 그녀의 계정을 차단하며, 비겁한 방관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