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2. 무장산
언제였, 던가는 길을 나서기 전부터 설렜다. 요즘은 길을 나서기 전에는 아무런 마음도 일지 않는다. 가고 싶은 길이 떠오르지 않아 발이 이끄는 대로 간다. 숲에 들어서 일렁이는 공기를 호흡하고 나서야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권태를 사는가 싶은 날들이다. 오늘은 발이 무장산으로 이끈다.
무장산 가는 길은 아직도 하천 정비 중이다. 몇 년째 계속인데 태풍의 피해가 컸다지만 하천가의 나무를 다 베어내고 제방을 쌓는 것이 영 마뜩잖다.
마을 아저씨가 맛 보라며 나무에서 바로 따서 건네준 살구를 먹는다(인사를 잘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잘 익어 씨가 쏙 발라지는 폭신하고 달콤한 과육을 입에 쏙 넣는다. 맛있다, 과일은 뭐니 뭐니 해도 그 나무 옆에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중장비가 돌아다니고 먼지가 일어 소란스러운 중에도 새들 소리는 쉬지 않고 들려온다. 눈에 들어오는 건 하천과 계곡의 주인인 노랑할미새다. 흰 구름 흩어져 부드러워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전깃줄에 앉아 꼬리를 까닥인다. 뻐꾸기 급히 우는소리에 섞여 "호잇, 호잇" 소리와 높은 데서 아래로 "호오로로로롱" 목울대 굴리는 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온다. 수많은 새소리 중에서도 귀에 쏙 안기는 소리라 산에 잘 다녀오라 인사를 건네는 아주머니에게 무슨 새냐 여쭈니 너무 많은 소리가 들려와 모른단다.
나는 이 아름다운 소리를 잊지 못하고 집에 와 새소리 탐구에 들어갔는데 허망할 정도로 금세 찾았다. 호잇의 주인은 팔색조, 호오로로로롱의 주인은 호반새다. 세상에나, 만나보고 싶던 화려하고 아름다운 여름새들이 이토록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니 소리만으로도 감격에 겹다. 팔색조 보려면 망원렌즈가 필요하려나, 그러나 귀찮은 마음이 앞선다. 이것이 나란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계곡길은 길고 심심하다. 나뭇잎은 자랄 대로 자랐고 꽃은 없는 시기다. 나비 놀기 좋은 임도라 나비를 기대했지만 나비도 없다. 열매 구경하며 걷는다. 고추나무, 서어나무, 까치박달나무, 쪽동백나무, 모두 실한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그리고 층층나무. 와, 층층나무는 옆으로 뻗은 가지가 평평하여 쟁반 같다. 쟁반이 부서질 것처럼 열매를 많이 맺었는데 올해 나는 뭐 한다고 꽃을 보지 못했는지...
다디단 산뽕나무 열매를 몇 알 따먹고, 아직 작고 푸른 으름은 찜해 둔다. 작디작은 풀꽃 좀네잎갈퀴도 열매 맺었다. 열매가 보송보송 귀여워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보았다.
무장사지를 지나니 어두운 숲에서 큰유리새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이상하게 큰유리새 소리를 잘 알아채고 더 이상하게는 울울한 나무 사이에서도 그 작은 새를 찾아낸다. 다른 새들은 소리가 가까워도 보이지 않을 때가 허다한데 큰유리새는 찾다 보면, 보인다. 아주 높은 가지 나뭇잎 무성한 곳에 숨어 노래하지 않고 중간 즈음 빈 가지에서 쉬지 않고 노래해 그런 것 같다. 오늘도 여러 번 큰유리새를 확인하고 눈에 담았다. 매우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가 푸른 등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계곡이 끝나가는 길에서 귤빛 나비를 보았다. 그전에도 날아다니는 나비를 보았지만 너무 멀어 한 점 불빛 같았는데, 좀깨잎나무에 내려앉는다. 오, 굵고 짧은 까만 줄무늬가 화려한 시가도귤빛부전나비다(지난밤에 사진으로 만나 바로 알아봤다). 등판까지 온통 귤색이라 무척 화려하다. 접은 날개를 끝내 펴주지는 않았지만 달콤한 귤을 머금은 것처럼 내 온몸의 감각이 달콤해진다. 귤빛부전나비들을 만나면 누구라도 시각과 미각과 후각과 촉각이 공감각을 일으켜 여름 숲이라 해도 달콤하고 향기로운 늦가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확대해 보니 툭 튀어나온 눈이 보여 그 호기심 어린 눈빛에 또 반하고 말았다.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눈앞에 있는데도 아쉽고 그립다.
흰씀바귀 하얗고 물푸레나무 푸른 길을 걷는다. 길이 짧은 임도로 가지 않고 우회 길로 접어든 것은 나비를 보기 위해서다. 임도보다 이 길에서 더 다양한 나비를 보았었다. 그런데 올핸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자주 보아 무시하는 나비 몇 마리 보며 정상에 닿았다.
푸른 억새밭과 하늘색 부드러운 하늘이 펼쳐진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나비들이 난다. 그중에 내 눈을 끄는 작은 나비가 있다. 처녀나비 같은데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날아다닌다. 날갯짓이 부드럽고 명도가 낮은 황갈색 색감이 차분한데 비해 성격은 까탈스러운 듯 곁을 내주지 않는다. 한참을 따라다니다 포기하고 그늘에 앉아 쉬었다. 그러나 나비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눈앞에 다시 나타난다. 또 한참을 따라다니지만 나 잡아봐라만 한다. 골이 나서 애물결나비에 한눈을 팔다가 그만 떠나려는데 그때에야 풀잎에 가만히 앉는다. 봄처녀나비다! 예쁘다.
시가도귤빛부전나비를 만났을 때에는 오늘 기쁨의 총량을 모두 채웠다고 생각했다. 봄처녀나비를 만나니 보너스를 받은 것 같다. 화려하지 않아 뭉근한 기쁨이 이는 나비다. 날개 윗면도 어두운 밤색이라 날 때의 색감도 부드럽고 은은하다. 언제 애를 먹였냐는 듯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도 잠깐씩 사진 찍을 틈을 내주어 기분 좋게 놀다가 억새 밭을 내려간다.
어, 어, 봄처녀나비가 계속해 보인다. 억새는 봄처녀나비의 먹이식물 중 하나다. 그러니 이 너른 억새밭은 그들의 낙원일 게다. 숨기에도 좋은 풀밭이라 잘도 사라진다. 그중 한 녀석을 찍을 수 있었는데 이 나비는 정상에서 본 것보다 윗 날개 뱀눈이 많다. 빛을 잘 받아 색도 예쁘게 나온 요 녀석이 암컷이란다. 게다가 날개를 펴주는 나비를 만나 등판의 색도 확실히 보았다. 끝내 겨우 간신히 찍긴 했지만 사진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나비 고수들도 수컷 암컷을 다 보고 등판까지 찍는 행운을 얻기는 쉽지 않다 하는데 나는 참 복도 많다(그전까지 애걸복걸 투덜투덜한 것은 비밀이다).
"젊은 시절에 자신의 산을 오른 자는 늙어서 산의 풍성함을 맛보게 된다."
쉬는 틈에 읽은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의 <누구나 자신의 산에 오르기를 꿈꾼다>는 장에 나오는 경구다. 나는 젊은 시절에 나의 산을 오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이 들어 정상을 반드시 오르지 않아도 좋은 나의 산에서 이토록 풍성함을 맛보고 있다. 이 행운에 감사해하며 산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