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추석 이야기

생각 꽃, 가족

by 풀잎


경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갓 결혼한 친구가 남편과 싸우고 서너 시간을 달려 내게 온 적이 있다.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왔다고 했다. 친한 친구도 아닌 그녀의 느닷없는 방문에 참 뜬금없다 생각했다. 성질만 있지 철도 없다 생각했다. 친구의 남편은 나도 아는 선배였는데 그 밤 택시로 달려온 선배는 민망했는지 내게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고 아내를 데리고 돌아갔다.

결혼 후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났다. '너도 부초였던 거야.' 나는 남편과 대판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싸움에 소질이 없기도 하지만 나도 그녀처럼 갈 곳이 없어 막막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제야 나를 찾아온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워졌다.


나는 명절에 멀다는 이유로 친정에 거의 가지 않는다. 거리는 내게 쉼이 되지 않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을 충분한 핑곗거리가 되어 주었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두 밤 정도 자고 온다. 내색하지 않지만 싸우거나 모진 말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신경이 바짝 곤두서 지낸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어서 엄마도 내가 가는 날이면 첫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한다. 원래도 잠을 못 자는 편인데 유독 첫날은 몽유병 환자처럼 서성이는 엄마를 보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밤늦게 도착한 엄마의 시골집 작은방에 들어선 나를 맞은 것은 거미줄이었다. 엄마는 쓸고 닦는 일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다. 집이 낡았을망정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깔끔했는데…, 잘 보이지가 않아 거미와 함께 살게 되었다고, 엄마는 씁쓸하게 말했다.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잘 쓰지 못하는 손 때문에 더했을 것이다.

작년에는 두 손을 거의 쓰지 못했다. 그때에도 제일 마음이 쓰인 게 방을 닦지 못하는 거였다. 전화하면 걸레를 짤 수가 없어 속상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런 엄마가 이제 조금 내려놓은 것도 같다. 그래도 엄마는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내가 대신 엄마 손이 닿지 않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것을 흐뭇해한다. 다음날 아침 나는 거미줄을 걷고 구석구석을 쓸었다. 도망가는 거미는 살려두면 금방 다시 줄을 칠 것이기에 되도록 잡아 죽였다. 그제야 엄마 집처럼 보였다.


그러고 나서 거의 한숨도 못 잔 엄마를 재우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곱게 차려입고 팔십 중반의 또래 할머니들 중 누구보다 깔끔한 멋쟁이라며 한차례 자랑을 하신다. 언제부턴가 집에 간 둘째 날엔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를 갔다. 그때마다 엄마는 차 안에서 달게 잤다. 움직이는 차의 리듬이 엄마를 숙면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얼마쯤 하다 보면 엄마는 곤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카페에서 먹는 빵과 음료,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작년에는 치매 진단과 아픈 손 때문에 우울감에 빠져 거의 먹지 못하던 엄마가 이번에는 뭐든 나보다도 훨씬 잘 드셨다. 치매 증상은 보이지 않고 손도 많이 나아졌다. 고기를 먹지 않는 나를 걱정하며 정작 당신이 많이 드셨다.


오랜만에 관광지 노점에서 번데기를 보았다. 나는 입에도 안 대는 번데기를 엄마는 좋아한다. 한 컵 사드렸더니 역시나 맛있게 드신다. 번데기는 깨끗한 거라고 몇 번을 말한다. 누가 뭐라나? 웃는다. 엄마는 고치 실을 뽑을 때 먹는 번데기가 제일 맛있다고 한다. 그게 뭐냐 묻는 내게 고치 실을 뽑기 위해서는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삶는다고 한다. 실을 다 뽑고 그 속에 든 번데기를 쏙 빼먹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다고.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맛있겠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과수원에서 갓 딴 싱싱한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듯 씹는 순간 구수한 물이 쪽 나오는 싱싱하다 못해 펄떡이는(엥?) 갓 삶은 번데기를 먹으면 맛있을 것 같다. 그런 번데기가 아니어서 엄마는 종이컵의 삼분의 일이나 먹고 나머지는 버린다.




오가며 단잠을 잔 덕분인지 그 밤에는 아예 못 주무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새벽에 잠이 깬 나는 슬며시 나와 집 앞을 서성였다. 월몰 시간이 일러 벌써 달은 붉게 서쪽 하늘에서 지고 있었다. 하, 별이 오지게도 떴다. 총총히 박혀 반짝이는데 이렇게나 아름다운 밤하늘 별은 몇십 년 만인 것 같다. 별을 찾아 떠난 여름밤이 꽤 되었지만 그때마다 낭패였다. 이렇게 이곳에서 별을 만날 거라 생각지 못했다.


가로등에서 멀어지기 위해 논가에 나가 앉았다.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차가운 별들이 반짝이고 밤바람은 시원했다. 아이들을 깨우고 싶었지만 엄마를 깨우게 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엄마가 대문을 나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린다. 길 잃은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 같다.

엄마랑 둘이서 별을 본다. 무섭지도 않냐며 나무라더니 엄마도 고개를 빼고 별을 본다. 어젯밤엔 새벽 내 밖에 나와있었지만 이렇지 않았다며 놀라워하신다. 나는 집에 올 때마다 달빛 좋을까 하여 밤에 깨어 나와보지만 어젯밤은 흐린 구름으로 가득하여 까맣기만 했다. 아이들을 깨울까 묻자 선뜻 깨우라고 하신다. 새벽 3시를 넘어 4시가 되어 가는 시각에 깊이 자는 아이들을 흔들어 깨웠다. 별 보러 가자!


웅얼웅얼 잘게 투덜거리며 따라 나오는 와중에도 손에 핸드폰이 들려있다. 와~ 예쁘다! 아이들도 별빛에 반해 눈을 반짝 뜬다. 별이 진짜 많아! 나는 핸드폰 사진에 몇 개 담기지 않을 총총한 별을 아이들 눈에 직접 가득 담을 수 있어 기쁘다. 별을 찍는 아이들 뒤에서 나는 별빛 무리에 둘러싸인 아이들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 그대로 담기지 않아 조금 속상하지만 그만큼 내 눈에 가득 담는다. 엄마는 이런 우리를 보고 저 멀리에 있는 별이 어쨌든 찍힌다며 마냥 신기해한다. 옹기종기 모여 별을 바라보다 하품을 한다. 그만 들어가 자자. 어두운 방에서는 휴대폰 화면에서도 제법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엄마와 나는 여전히 서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지만 한편으론 함께 별을 볼 수 있는 모녀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하다. 지구와 달의 거리가 가까워져 슈퍼문이 뜬다는 이번 추석만큼 그 밤 엄마와 나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을지도 아니면 다시 멀어질 지구와 달처럼 잠깐의 흐름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게 다 무슨 상관이냐 싶다. 이제는 사랑이 온전하기만을 바라지 않을 만큼 나는 나이 들었고 엄마의 남은 생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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