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나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엄마' 있는 분, 이라는 말에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럴 수도 있지. 하필 이 때문에 부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엄마가 있어 누군가에겐 부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감정의 파동을 일으킨다.
내겐 없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이 아버지였고 다음이 오빠였고 그 다음이 엄마였다.
내가 열일곱 살에 돌아가신 아버지에겐 속임수였지만 농약병을 내밀었고, 오빠와는 3년 넘게 한 마디 말을 섞지 않았으며, 엄마에겐 비수를 꽂는 말(아버지 편을 들었다)을 서슴치 않았던 나는 그야말로 독한 아이였다.
엄마는 독하다고 했고 언니는 냉혈한이라고 했던 나 자신을 변호하자면, 그럼에도 나는 그들을 마음 속 깊이 미워하지는 못했다. 아버지의 지난한 세월을 오빠의 무거운 어깨를 엄마의 한맺힌 슬픔을 나름 이해했다.
나의 사주에는 목화토금수 오행이 고루 들어있고 별자리는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천칭자리며 문이과 성향을 검사한 결과는 거의 5:5 로 나왔다. 이런 것에 깊이 천착해 본 적은 없지만 하나같이 나의 기질을 보여주는 것이라 판단했다.
나는 거리를 두는 사람이다. 그래서 쉽게 좋아하지도 쉽게 미워하지도 못한다. 오래 전 어려서는 마음껏 미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부르짖곤 했다. 나의 정당성을 크게 앞세우고 그들을 미워할 수 있기를, 돌을 던질 수 있기를!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나의 기질은 그런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와 오빠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돌아가신 날에 나는 하나도 슬프지 않았다. 그보다 이제 조금이나마 평온한 날을 맞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설렜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마당에 환히 밝힌 불은 내겐 희망의 상징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빠와는 말을 트고 지냈지만 영영 어색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동생을 괴롭히고 혼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 오빠. 나는 바락바락 대들다가 끝내는 말을 버리는 것으로 잘못된 사랑을 거부했다. 그들의 삶이 아무리 안쓰럽다 하나 그들이 내 삶을 안쓰럽게 만드는 것을 어찌할까. 나는 위악의 시간을 살았고 그것이 편했다.
내게도 엄마가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졸래졸래 따라다니며 엄마를 귀찮게 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본 엄마는 자기 한에 스스로 잡아먹힌 사람이었다. 물러지도록 푹 절여진 한에서는 썩은 냄새가 난다. 어려서부터 우리는 엄마를 아버지로부터 보호해야 했고,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는 지난 삶으로부터 지켜야 했다.
자식을 둘이나 앞세우고 조금 더 세월이 지나서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아들까지 앞세운 엄마. 명절이면 뒤란은 엄마의 눈물로 얼룩졌다. 생각하면 눈물이 앞서고 그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엄마를 이해했지만 이해가 사랑은 아니다. 엄마는 자식들이 행복해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의식이 행하는 일이 아니어서 엄마 스스로는 알지 못한다. 우리는 엄마에게 아무런 말도, 좋은 일이거나 걱정되는 일이거나를 꺼내놓을 수 없었다. 어려서는 엄마의 삶이 힘겨워 보여서, 조금 자란 후에는 아무런 공감도 얻을 수 없음을 알게 되어서.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은커녕 아주 작은 서운함마저도 내비치지 못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참담함을 목격하고 싶지 않다면 말을 삼켜야 했다. 오로지 자식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엄마를 추앙해야 했지만 그러지도 않았다. 그냥 불쌍한 엄마로 남겼다. 나는 엄마가 그립지 않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위에 두 언니와도 소원하게 지낸다. 함께 산 시간이 적어 그렇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어야 일테면 결혼이나 죽음 같은 일이나 있어야 의무감으로 연락을 한다. 나는 이렇게 가족들과 멀어져 있다. 두살 터울인 언니하고만 친하다.
엄마의 손끝만 닿아도, 닮았다는 소리만 들어도 몸서리치게 된다는 언니들과 나. 아주 잠시, 서먹했던 언니들과 한통속이 되었던 시간에 우리는 이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무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어.'
그럼에도 언니들은 엄마를 돌본다. 알뜰살뜰까진 아니어도 해야할 바를 한다. 모진 소리로 엄마를 뒤집어지게 한 나지만 입에 담을 말 못 담을 말 가리지 않는 엄마의 한풀이 삼은 넋두리를 가장 오래 들어준 것은 나다.
우리는, 나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안쓰러워 한다. 예전보다 엄마는 조금 나아지셨다. 자신을 조금 덜 안쓰러워 하신다. 나는 자기연민이 얼마나 무서운 감정인지, 자기자신은 물론 가장 가까운 사람까지도 파괴할 수 있는 감정인지를 엄마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다행히 네째언니와 나는 자기연민의 늪에 빠지지는 않았다. 위로 두 언니들은 모르겠다.
나도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저절로 엄마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외려 미워하면서 닮는다는 소리에 마음을 바짝 경계해야 했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 무던히 노력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엄마랑 피부가 닿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엄마를 부축해야 할 때 피부 면적이 적게 닿는 겨울이 편할 정도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마음도 예전보다 넉넉해졌지만 몸은 그만큼 유연해지지 않는다.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마음으로도 살아지는 세상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위로를 구하지도 않을 만큼 상처는 아물었고 더는 상처가 되지도 않는다. 이제는 엄마와 싸울 일도 냉담할 일도 없다. 엄마도 나날이 편안해지는 얼굴이라 안심이 된다.
내게도 분명 엄마가 있어 좋은 날이 있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그리워한 날도 있었다. 그날을 글로 옮기며 하염없이 꺼억꺼억 울던 밤도 있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따스한 기억 하나 있다면 누군가가 부러워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엄마가 돌아가시는 날 슬플 것 같진 않다. 또 모른다, 어떤 회한으로 펑펑 울지도. 신이 있다면 그저 엄마가 나보다 먼저 생을 마치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그리 들어주기 힘든 부탁은 아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