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삶의 태도
나는 자랑할 그 무엇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누군가 나를 부러워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모든 건 상대적인 것이니.
그러나 또 나는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일이 별로 없다. 자랑을 한 보따리 늘어놓는대도 잠시 흔들릴 뿐 돌아서면 잊고 속을 끓이지 않는다.
아이가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가끔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경제적 여유도 있고 넓은 집에 좋은 차 거기에 남편은 다정하고 자신은 능력 있고 기타 등등, 그저 나와 다른 세계구나 할 뿐이다.
그러려는 건 아닌데 오히려 나는 그들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는 이가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사 직업을 가졌다 하자. 그 옆에서 아첨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그런 이유로 친해지고 싶지 않고 아첨할 이유는 더더욱 모르겠어 무심히 대한다. 명품을 휘두르고 와도 취향이 저렴하여 알아보지를 못한다. 그러니 만약 뽐내고 싶었다면 그가 누구든 내 앞에서는 실패다.
내가 부러운 세상은 모험으로 가득한 세상, 주류의 삶을 벗어나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이의 세상이다. 그 세상은 부럽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세상은 내 가까이에 있지 않다.
나는 불안이 크지 않은 무딘 사람이다. 불안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그저 오늘을 잘 꾸리는 것, 시시한 마음가짐 하나다.
그러나 그 마음조차 시시하여 '잘'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가난하게 살 각오를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나는 화장도 하지 않고 미용실에도 가지 않고 옷도 꼭 필요한 것 외엔 거의 사지 않는다. 신발은 떨어질 때까지 신어 생필품 외에 소비할 것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생활비 나가는 것을 보면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어디 뒷구멍이 있어 줄줄 새나? 끝도 없이 필요한 돈.
경제적 자유, 내게 그런 것은 없다. 가난할 자유만 있을 뿐이다.
만약 누군가 나를 부러워한다면 그 이유는 여유로운 '시간'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얻는 대신 다른 많은 것들을 버렸다. 의지를 갖고 '버려야지'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원래 욕망의 크기가 개미 눈물만큼 작다.
아마 나의 노후는 등 따시고 배부르지 않을 것이다. 근근이 살아갈 것이다. 즐기는 삶도 다정한 노부부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근근이'여도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만큼의 가난 혹은 부이면 좋겠다. 그러려면 아프지 않아야 할 텐데 의지의 문제가 아니니 그것 하나 걱정이다. 다른 것은 뭐 죽고 나면 의미 없을 것들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허무의 마음에 갇혀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삶을 대하는 태도 또한 자랑할 게 못 된다.
아, 그러나 지금 내게도 자랑할 것이 하나 있다.
올봄 제대로 꽃 피워 준 화이트링 제라늄!
다른 제라늄들 지고 홀로 여름을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