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가족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에 물기가 눅눅하였다. 울었냐고, 농담처럼 물었고, 울었다고,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대답이 들렸다.
엄마는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통증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았고, 때때로 잦아들어 반짝 희망을 주었다가 더 깊은 절망에 빠지게 하는 것 같았다.
젊을 때 잘 먹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고, 나는 그건 별 상관이 없는 거라고, 나이 들면 누구나 아프기 마련이라고, 엄마보다 더 잘 아는 척 우겼다.
나는 엄마가 쓸데없이 억울해하는 게 싫다. 젊은 날의 가난이 지금 당신을 더 아프게 한다는 류의 서러움을 보태는 생각들이 싫다. 그러나 이런 나의 태도가 엄마의 억울함을 줄이기는 커녕 가슴을 더 답답하게 할 것이다. 알지만 냉정한 말이 나오고 만다. 입을 꼬매 버릴까 보다.
근래 나도 조금 힘을 쓰는 일을 하거나 신경 쓸 일이 있으면 몸이 아프다. 마른 기침을 몹시 해서 숨 쉬는 게 무서운 날도 있다. 들숨 한 번에 목과 가슴이 아픈 기침이 한참 지속되거나 팔에서 시작된 통증이 몸 이곳저곳을 도는 동안 앓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훅 마신 숨을 멈춘 채 통증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릴 때도 있다. 그래봤자 꾀병처럼 지나는 것들이지만 젊은 내가 이러는데 엄마는 어떨까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러나 나는 빈말로도, "엄마, 아프지 말고 오래 살아야 해."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어디가 아프고, 병원에 다녀왔고, 약을 먹었고, 또 어디가 아프다는 소리를 묵묵히 듣는 게 그나마 최선이다.
올해 엄마 연세가 85, 예전 나이로는 87세, 나는 엄마 나이가 될 때까지 살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30년을 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암담하다. 적극적으로 죽을 마음은 없지만 남은 생이 길다는 것이 기쁘지 않다. 10년은 괜찮고(아이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20년은 긴 것 같다. 30년 이상은 너무 길다. 막상 죽음이 내 앞에 온 순간에는 무서워 일 년만 더, 십 년만 더 야금야금 물러달라 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내가 이렇다 하니 아는 언니가 왜 그러냐며 딸들 결혼하는 것도 보고 손주도 봐야지 했다. 그 순간 퍼뜩 알았다. 나는 아이들의 내일이 딱히 궁금하지 않고 손주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일단 종족 보존의 욕구가 없다. 그렇다 해도 아이들의 내일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심할까. 변명을 하자면 나의 내일에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오래 살며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지금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은 있어도 내일을 꿈꾸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이런 말은 친구든 가족이든 모르는 사람한테든 말하기가 어렵다. 누구도 좋아할 만한 말이 아니다. 엄마도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할 것이고, 설령 이해한다 해도 내가 엄마가 억울함을 증폭시키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엄마도 이런 나의 염세적인 생각이 싫을 것이다. 염세적인 나는 언젠가 지구가 멸망하길 바라지만 지금 오늘이 우울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기도 어렵다. 이런 마음이 다른 생명에겐 미안하지만 인간에게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다는 것도.
그러니까 '오래 살아야 해', 라고 말하지 않는 건 엄마가 싫어서가 아니다. 나는 누구라도 건강하길 바라지만 오래 사는 걸 기원하지는 않는다. 모두 적당히 살자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속내를 차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질병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나이 들면 누구나 아픈 거라고 그러니 억울해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게 최선이다.
이러한 최선이 나도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전화나 좀 자주 해야지, 하고 전화를 했다. 엄마는 국수를 삶아야 한다며 몇 마디 않고 전화를 끊는다. 아파서 손을 잘 못쓰게 된 지 한참인데 밥이 넘어가지 않아 아픈 손으로 국수를 삶는단다. 삶은 왜 이렇게 끝까지 혹독한지. 젊은 날의 가난이 불러온 통증은 그렇다 쳐도 현시점의 가난은 서럽고 외로움은 외롭다. "너 같은 딸 낳아 봐야 내 속을 알지." 했던 엄마의 말이 어려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부당할 것도 없다. 나 같은 딸은 나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