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더라도 줄탁동시가 필요해

생각 꽃, 표현

by 풀잎

도덕산 산행에서 차를 태워준 스님께서 내게 물었다.

"보살 님은 나이가 오십 중반쯤 되오?"

"오십 초반이에요."

나는 키가 작고 귀염성 있는 얼굴이라 대개는 나이보다 적게 보았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피부는 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하고 로션조차 제대로 바르지 않아 메마르고 잡티까지 무성하여 도저히 적게 보아줄 수 없을 것이다. 요즘은 다들 젊어 보여 나는 시대에 역행하는 중이라는 생각도 한다. 흰머리가 빨리 늘어 백발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곱슬거리는 흰머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곤 하는데, 아마 나는 아주 정상 범주의 사람은 아닌가 보다.


어려서의 동안은 기쁜 일이 아니었고, 한 번도 예쁜 외모인 적이 없었어도 딱히 속상하지는 않다, 고 생각했다.

"날 닮으면 어쩌니?"

오래전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딸이 나를 닮으면 어쩌지 반농담으로 걱정했는데 친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널 닮으면 예쁘겠지."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나, 예쁜 사람이었구나!' 기뻤던 것을 보면 예쁘고 싶었던 거다.


사선으로 살짝 기운 얼굴, 그녀가 무언가 이야기를 하며 설핏 웃었다. 그 순간 햇살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바람이 선뜻 그녀의 가늘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섬세하게 건드리고 지났다. 무슨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에서 지성과 기쁨과 솔직함이 보였다.

'아, 아름답다!' 특별히 예쁘지는 않고 거리에서 만나면 뒤돌아보지 않을 평범한 얼굴이었지만 나는 순간 매혹되었다. 평범해도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엔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크게 느꼈던 날이었다. 그래서 조금 울적하기도 했던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반짝여 본 적이 있나? 타인이 나를 그렇게 보아준 적이 있나? 궁금했다.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다. 없었으므로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 매력 없는 사람을 숱하게 보아 왔으므로,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믿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의기소침해졌고 조금은 슬펐다.


예쁜 얼굴보다 매력적인 얼굴을 갖고 싶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기쁨으로 환하게 벌어지는 입술, 타인의 삶에 촉촉하게 젖어드는 눈가, 무언가에 몰두해 있는 옆모습,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순수하게 기뻐하거나 정당하게 분노하는 얼굴이 좋았다. 평범한 나도 몇몇 순간은 누군가에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느 날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매력적으로 느낀 그날의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당신도 그렇게 반짝이곤 해.'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눈빛은 때로 말해진 언어보다 진실한 언어가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아, 그랬구나. 그럼 그렇다고 말 좀 해주지. 몰랐잖아. 인색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래놓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던가?

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 민망한 말을 했던 것 같다.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나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 그런 말을 내게 들려줄 당시에 나는 흘려듣거나 믿지 않았다. 그냥 하는 소리라고, 콩깍지는 연인 사이에만 끼는 게 아니라고, 누가 나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보아주겠냐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자신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느낀 그의 매력이 진심이라면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하자. 설령 그 순간엔 믿지 못해도 그 사람의 긍정의 시간을 앞당겨 줄 것이고, 언젠가 자기를 긍정할 그때에는 '당신 그때 빛났어', 이 말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스치듯 했던 그 말이 한 사람을 살리는 말이 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도 모든 순간이 빛날 수는 없다. 자신이 빛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알아차리는 순간, 질투하지 말고, 민망해하지도 말고, 후다닥 말하자. 알아차리도록. 말이 어렵다면 글로 글이 어렵다면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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