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꽃, 사람
H는 나의 언니와 3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산 사람이다. 언니에게는 가족 같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가족, 나에게는 가족 같은 언니다. 내가 아는 테두리에서 이 정도로 오지랖인 사람은 없다. 딱 질색인 유형이다. 나는 20년 넘게 H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뭐지, 대체 당신이란 사람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내가 원치 않는 선의를 마구 베풀고 술만 마시면 전화해서 한 말 또 하고 또 하는 바람에 아주 진저리를 쳤다. 쉽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전화를 냉정하게 끊지도 못하는 나 자신을 얼마나 또 미워했던가. '내게, 술주정뱅이는 아버지만으로도 충분해요.' 소리가 목구멍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은 세월이 최소 20년이다.
참았던 건 당연히 내 언니 때문이다. H가 내게 그럴 수 있던 것도 내 언니 때문이다. 오지랖 언니에게 내 언니의 동생은 이미 자기 동생이니까. 사람들한테 소개할 때도 자랑스러운 자기 동생 소개하듯이 한다. H에게 내 언니는 세상에 이런 사람 없습니다, 다. 속이 하해와 같이 깊고 넓은 사람, 성실한 사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주는 세상에 둘도 없이 좋은 사람. 나는 내 언니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지만 자기가 대단하다 여기는 동생의 동생이니까 당연히 자랑스럽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하여간에 고맙습…, 아니 안 고맙다.
H의 첫인상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였다. 이상하고 특이한 캐릭터다. 말은 많지 않은데 주변 사람 일에 온갖 참견은 다 하고 다닌다. 친화력도 엄청 좋아 온 동네 사람과 다 친하다(나만 빼고).
H는 자신에게는 돈 쓰는 일이 거의 없지만 남에게는 씀씀이가 크다. 그만큼 사기도 잘 당한다. 조금 가까워졌다 하면 사람들은 H의 주머니에서 어떻게든 돈을 빼내려고 한다. 그게 다 보인다(H 본인한테만 빼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H가 몸이 좋지 않았을 때 혹여 재산이 내 언니 앞으로 가게 될까 난리를 쳤던 적이 있다. 뭐 하나 도와준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서글펐다. H의 엄마는 팥쥐 엄마 저리 가라다. 아들 아들 노래 부르다가 딸한테서 돈 받아 아들 주머니에 넣어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래놓고 딸 성질머리 나쁘다고 얼마나 미워하던지, 미워하면서 해 달라는 것은 얼마나 많던지. 내가 봐도 여간 딱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 돌아가실 때까지 돌본 것은 H였다(이상하게 미움받는 자식들이 돌보더라). 그러나 H가 원하는 그것, 하찮은 사랑은 끝내 도달하지 않았다.
H가 달라졌다.
그렇게 사기를 당하고 당하고 이용을 당하고 당하고 또 당하더니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조금이나마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모두에게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버린 것 같다. 엄마가 죽어서 마음이 바뀐 걸까.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H가 이번에 돌볼 상대는 우리 엄마다.
엄마는 언니가 고생하는 것이 다 H 때문이라며 미워했다.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일만 하느라 엄마 보러도 못 온다고. 그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차로 5분 거리, 언니는 엄마가 싫어 안 간다. H가 대신 바리바리 실어 나른다. 엄마 좋아하는 과일 술 떡 고기 이불 텔레비전 안마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것도 H다. 마비가 온 손 때문에 거의 매일 병원에 다녀야 할 때도 그랬다(당시 H 본인 몸도 성치 않았다). 엄마만 모시는 것도 아니다. 엄마 사는 동네 어르신들 목욕 갈 때도 모셔다 드리고 병원에도 함께 모시고 간다. 엄마는 이것으로 동네에서 좀 으스댈 수 있게 되었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긴긴밤을 덜 외롭게 보낸다. 전에는 틈만 나면 H 흉을 보던 엄마가 이제는 고맙다고 한다. 그동안 술 때문에 까먹은 점수도 상당하니 H가 누구를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
H는 양쪽 다리를 다 수술했다. 큰 수술이었다. 병원에는 늘 혼자 다녔다. H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언니는 가게를 지켜야 했다. 오지랖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다니고 주변 사람들 챙기느라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는 동안 가게 일은 언니 몫이었다. 나는 그래서 오래 H가 미웠다. 참기만 하는 언니도 미웠다.
지난 추석에 사고가 나 아픈 다리를 또 다쳤다. 내가 H와 함께 응급실에 갔다. 휠체어를 끌어 검사실에 데려다주고 결과를 기다리는 두 시간 여 옆에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보호자 동반으로 병원에 간 게 처음인 H. 돌아와 언니에게 내가 있어 든든했다고 말했단다. 눈물이 찔끔 났다. 속으로 욕도 했다. '인간들아, 왜 그러고 사니?'
나는 H와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미 행복할 것이다. 행복의 조건이 모든 게 충족된 상태는 아닐 것이기에. 내 삶의 골목골목에 언니가 서 있었다면 언니에겐 H가 있었다. H에겐 언니가 있었다. 사는 동안 어떤 부침 앞에서도 한결같이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인생 아닌가. 가끔 사람들이 둘의 관계를 동성애가 아니냐며 의심했다. 그런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대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특히 우리 가족을 향해서는) 당신이 언제 언니에게 하찮은 사랑 한 조각 나눠준 적이 있었냐고 묻고 싶다. 사람은 곁에 온전히 나를 믿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스스로를 믿으며 살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데 3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생 앞에서 겸손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