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똥

생각 꽃, 생명

by 풀잎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을 다녀오니 차 보닛이 새똥으로 덮여 있었다. 나무 아래도 아니고 차 위로 지나가는 전선도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떼의 새가 내 차 위를 지나며 제법 더러운 차를 보고서 대장이 '저기가 화장실이닷, 발사!' 이러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 수북했다.

한낮의 태양이 뜨거워 차 문의 손잡이에 화상을 입을 것만 같은 날이었다. 나무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차를 세우고 청소용 부직포에 물을 적셔 대충 닦았다. 새들이 하는 짓이란!


나는 그날 여러 새를 보았다.

오색딱따구리가 자주 아는 척했다. 그중 한 녀석은 유난히 깃이 깨끗하고 색이 선명했다. 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여 깃털갈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이제 막 독립한 새끼 새인가 짐작만 했다. 내 새끼도 아닌데 예뻐 흐뭇했다.

이름은 모르는 짙은 잿빛 작은 새가 내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멀리 가지도 않고 길앞잡이처럼 몇 미터 앞에서 겅중겅중 날더라. 어치도 푸드덕 아는 척하고, 꾀꼬리 소리에 설레기도 했으나 모습은 보지 못했다. 보이지 않아도 새들과 함께 걷는 것은 즐겁다.


나비, 새, 애벌레, 곤충에게 관심을 가진 후 자주 그들과 이야기한다. 뭐 그냥 나이가 들어 그런 걸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혼잣말이 는다잖나. 그러니 중년의 여자가 꽃이나 새를 보고 대화하는 걸 보면 외로워서 그러려니 못 본 척해 주시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미가 자꾸 뭐라 뭐라 하는데 소리의 근원지가 나무 위가 아닌 땅이었다. 뒤집혀 도움을 구하는가 싶어 몸을 구부리고 보는데, 와, 성격 있는 매미가 성질을 와락 낸다. 쳇, 지가 먼저 아는 척하고 성질이다. "너도 갱년기니?" 그 성질머리에 답하고 뒤집힌 건 아니길래 후딱 자리를 떴다. 겁 많은 강아지 앙칼지게 짖듯 내가 무서운 건지도 모르니까.

몸이 어쩌다 발라당 뒤집혀 괴로워하는 딱정벌레는 바로 해주니 휘리릭 패기 있게 날아간다. 감사의 인사는 그의 자유로운 날갯짓이 대신한다. 흐뭇하였다.

길 한가운데 떨어져 헤매는 애벌레는 나뭇가지에 올려 사람 발길 닿지 않는 곳에 놓아주었다. "잘 살아 내렴. 죽더라도 사람 발길에 밟혀 죽지 말고 새한테 잡아먹히렴." 덕담인지 악담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린다. "저 인간 뭐라는 거야!" 애벌레 소리 뒤통수에 들려오면, "너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 인류애라 하느니라." 애벌레에게는 들리지 않게 속엣말 했다.


예전의 나는 물컹한 새똥이 차 이곳저곳에 떨어져 있는 걸 보면 '이놈의 새들!'이라며 화를 내고 씩씩거렸는데 지금의 나는 그냥 쓱쓱 새똥을 닦는다. 이게 다 사랑의 힘 아닌가 생각한다. 좋아하니까 화가 안 난다. 아니 쬐끔 난다. 집에 와 보니 얼룩덜룩 차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세차를 해야겠는데 귀찮다. 비가 오길 기다려 볼까. 이러니 새들도 만만하게 보는 거겠지. 아무려나 비야 오너라, 날이 가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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