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렬이 두식, 만원과 아침에 만나 해지고 헤어진지 어느새 열흘이 되었다.
열흘 전만해도 두 사람을 피해다닐 생각이었다.
누가봐도 그들은 낙오자였으니까.
주류에서 밀려난 뒤 자리를 잡지 못하고 쓸모없는 노인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들과 어울리면 자신도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 상렬은 갈 곳이 없었다.
혼자 밥먹는 것도 싫었다.
이미 그의 처지를 알았으니, 다시 만나도 창피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점심은 주로 근처 백반집에서 먹었다.
간판도 없는 걸 보면 무허가 식당이 분명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백수 셋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반갑기만 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근처에 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도 있다고 했는데 두식과 만원은 아직 그런 곳까지 갈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여태 남은 자존심이있다는 게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상렬의 생각보다 아주 밑바닥은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오늘도 정오가 되었다.
평소처럼 백반집으로 가려는 만원과 상렬을 두식이 붙잡았다.
"감자탕이나 먹으러 가지."
근처에 유명한 감자탕집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가격이 백반집의 세 배였다.
만원과 상렬이 꺼리는 표정을 짓자 두식이 지갑이 든 가슴팍을 툭툭 쳤다.
"아들이 왔었어."
"형님 용돈 받으셨군요?"
두식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원은 제 일처럼 기뻐하며 상렬의 어깨를 툭 쳤다.
"형님 아들이 아주 효자야. 형님이 자식 농사를 참 잘 지으셨어."
"자네도 마찬가지지. 딸이 아버지라면 끔찍이 아끼잖아."
그랬구나.
그래서 두 사람이 놀고 먹을 수 있었던 거구나.
그 생각을 못했네.
상렬은 처음으로 이 무리에서 제일 못나보였다.
이 무리에서는 가장 젊고, 백수된 기간이 제일 짧았기에,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믿는 구석이 있는 건 두 노인이었다.
제 아이들은 돈벌이 하려면 멀었다.
결국 저 두 노인이 간 길을 나도 가게 되는 걸까.
생각에 잠겨 두 노인을 따라 걸었다.
멋들어진 간판이 달린 감자탕집은 넓고 쾌적했다.
옆 테이블과의 간격이 넓었고 음식은 정갈하고 맛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식당에서 천천히 식사를 마친 그들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만원이 그런 말을 꺼냈을지도 모른다.
"커피는 제가 사겠습니다, 형님."
"아이구, 뭘 커피까지. 그럼 공원 근처 카페로 갈까?"
"아휴 거기는 맛이 없어요. 스타빡스로 갑시다."
"스타빡스?"
한발 물러나 있던 상렬이 끼어들었다.
"스타벅스 말씀하시는 거죠?"
"어어, 그렇지. 가자고. 형님 가십시다."
"커피 한잔을 뭐 비싼데서 먹을라고... 그냥 싼데로 가지."
"제가 예전에 한번 마셔봤는데 맛이 다릅니다. 일단 가 보세요."
만원이 두식의 팔을 잡아 끌었다.
상렬은 추레한 세 남자가 괜히 무안이나 당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랜만에 향 좋은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