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이 커지지 않았다면,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가져가야 하는 걸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직원이 가져다 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식의 목소리는 커도 너무 컸다.
급기야 테이블을 내려치며 '어린 여자가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꾸야!'라고까지 했다.
그러니 직원도 가져다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손님들은 물론 후배 직원들이 다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소동을 잠재우려 커피를 가져다 주면, 그걸 본 후배 직원들도 그런 식으로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상렬은 커피를 가지러 가면서 이제 서른을 넘겼을까 싶은 여직원의 리더십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미안해요."
트레이를 받으며 자존심때문이었다. 나는 저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자존심.
비록 자그마한 목소리였지만.
라테 세잔이 담긴 트레이를 들고 테이블로 갔다.
"말세야 말세!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커피 한잔에 6천원씩 받아 쳐먹어!"
"그러게 말입니다. 가져다 주지도 않고. 어린 것들이."
"진정하시고 드세요. 좋은 곳에 왔는데."
상렬은 두식과 만원 앞으로 커피를 한잔 씩 놔주었다.
"음. 먹을만 하네."
"그쵸?"
두 사람은 언제 언성을 높였냐는 듯 흡족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그 순간 상렬은 그 어느때보다 더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도 한때 잘 나갔던 사람들이었다.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한 영화 감독과 1세대 벤처기업의 대표.
세상의 주인공처럼 영광을 누리던 그들도 한번 자리에서 밀려난 뒤로 다시는 중심에 서지 못했다.
변두리를 맴돌다가 이제는 누구도 씬경 쓰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일을 하지 않으니 세상이 바뀌는 것도 모른다.
저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제가 저 나이가 되었을때는 또 얼마나 바뀌어 있을까.
그때 나도 적응하지 못하고 소리나 고래고래 지르는 고약한 노인이 되어 있으면 어쩌나.
그러려면 지금 뭐라고 해야 하는데.
이 사람들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뭘 하고 있어. 들어 얼른."
상념에 잠겨 있던 상렬을 만원이 퍽 쳤다.
"별거 아니야."
"네?"
"이런 것도 뭐, 별거 아니라고."
두식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을 했다.
커피 주문하는 게 별거 아니라는 건지, 사람 많은 곳에서 고성을 지르는 게 별거 아니라는 건지, 그도 아니면 사는 자체가 별 거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네...."
상렬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머그잔을 들었다.
커피가 맛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