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고 싶었어

때가 오리라

by dropfairy

달리고 싶었어. 머리카락을 흩트린 채 정신없이 달려가고 싶었어.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텅 빈 운동장 응원석 한편에 나 홀로 앉아있더군.

달이 예뻐서였을까. 눈물이 맺혔어. 달빛이 정말 너무 고왔던 거야. 그래서 울었어.

새파란 하늬바람이 옆에서 날렸어. 바람이 달더라. 그래서 한참 동안 바람을 맞았어.






매일 달리는 게 너무 좋아. 헉헉대며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어.


지쳐서 걸음을 늦추면 어스름 하늘과 먼 곳 불빛이 예뻐 좋은 생각만 하게 돼.


하늘과 바람과 풀잎을 지나 젖은 얼굴을 지우고 말갛게 닦아낸 미소를 찾게 돼.


때문에 멀고 힘들어도 마침내 끝나고 마는 길 위를 오늘도 혼자 달려가.


네가 떠나서 난 얼마간 바뀌었어. 혼자서 영화를 볼 줄 알게 되었고 네가 아닌 이유로 웃을 줄도, 울 줄도 알게 되었어.


그리고 난 어떤 것이든 더 많이 참고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20년 전에 혼자 달리던 내가 이제는 러닝크루와 함께 달린다. 함께 뛰는 게 더 힘들다. 옆에서 잘 뛰는 사람을 따라가다 오버페이스가 되기도 하고 멈춰야 할 순간을 참아내고 질주하다 부상이 오기도 했다. 그래도 같이 뛰는 이유는 함께 뛰어야 더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독이 되지 않는 편인데 요즘 러닝에 약간 중독된 것 같다. 종아리가 탄탄하게 뭉치고 다리가 무거운데도 자꾸 나가서 뛰고 싶다. 날씨가 문제다. 날씨만 좋으면 강아지처럼 설레발치며 뛰어다니고 싶은 욕구가 솟아난다. 1년 전에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이 되었다.


집에서 13킬로를 뛰어가면 탁 트인 강 뷰의 대형 베이커리 맛집이 나온다. 항상 차로만 오던 곳이었는데 차 없이도 올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집을 나와 넉넉하게 한 시간 반 뒤면 토실한 빵과 달큼한 음료를 양껏 먹을 수 있다. 운동을 하고 먹으니 살이 찌지 않는다. 물론 빠지지도 않는다. 가슴팍까지 차오를 때까지 먹었는데 안 찌는 게 어디냐? 많이 먹으려고 많이 뛰고, 많이 뛰었으니 많이 먹는 루틴이 반복된다.






러닝을 하면서 처음 목표는 5킬로를 30분 안에 뛰는 것이었다. 이후 10킬로를 한 시간 안에 뛰기까지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20킬로를 뛰려고 의욕적으로 훈련 중이다. 최근에 근육의 성장을 충분히 기다리지 않고 더 빨리 많이 뛰려다 부상이 왔다. 12킬로쯤에서 시작된 무릎 통증이 천천히 뛰어도 지속되고 급기야 걸어도 절룩이게 되었다. 15킬로쯤에서 중도 하차 후 누가 봐도 다리가 아픈 사람처럼 집까지 걸어갔다. 생각해 보니 전날 빵을 먹기 위해 13킬로를 뛰었고 다음날 15킬로를 연속해서 달렸다. 그동안은 하루 뛰면 하루 쉬는 패턴이었는데 연속해서 10킬로 이상을 뛰고 사실 그전에 혼자서 월출산 등산을 다녀왔다.



수술 실밥을 푼 아버지를 시골집에 모셔다 드리고 병풍 수묵화처럼 드리워진 산을 생전 처음 올라가 보았다. 인적이 많은 천황사 코스로 올라가는 동안 경사가 쉽지 않아 네 발로 기어가기도 하고 혼자 왔냐는 말을 스무 번은 들었다. 뛸 수 있는 코스는 뛰어가며 3시간 정도 산행을 마치고 종아리와 허벅지에 근육통이 생겼다. 단단하게 엉킨 근육을 풀지 않고 장거리 운전과 러닝에 러닝만 했더니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몸이 안 좋으면 충분히 회복시켜야 하는데 무엇이 나를 조급하게 하는 걸까?


"운동을 왜 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멋있으려고' 한다고 답했다. 많은 브런치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INFJ이다. 내향인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데 요즘 내 행태를 보면 '은근 관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흔도 후반으로 넘어가고 직장 생활은 20년 이상 했고,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이제 나 자체를 드러내고 싶다. 주변에 멋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예순에 풀마라톤을 뛰고 비슷한 또래에 10킬로쯤은 40분대에 뛰는 여자분들이 많다. 그들과 비슷한 보조로 함께 달리고 싶어 스멀스멀 과욕이 생겼다.


글을 쓰는 이유도 달리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별 것 아닌 내가 별 것이 되고 싶었다. 글쓰기와 달리기로 꾸준히 연마해 가면 별 것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표를 밟아가는 단계에서 부족하고 시시하고 초라한 나를 마주하는 게 싫었다. 되도록 적게 실패하고 빨리 성취하고 많이 멋있어지려고 마음이 앞섰다. 열심히 한다고 꿈이 당장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충분히 기다리지 않고 대가를 바랐다. 봄이 돼야 꽃이 피고 가을이 돼야 영글지는 걸 깜박했다.


기다리는 게 제일 힘들다. 노력의 결과를 기다리고 상대가 마음을 열 때까지, 아이가 스스로 해 낼 때까지 , 아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는 모든 틈새에 몸서리쳤다. 기다리는 고통이 버거워 밖으로 내달리고 안으로 파고들어 글을 썼더니 성장이라는 열매가 남았다.


때가 되면 햇빛과 양분과 바람으로 결국 여물 질 텐데 당장에 연연하지 않아야겠다. 혼자 달리며 알게 된 나를 기억하고 같이 뛰는 우리를 응원해야겠다. 뒤서거나 앞서거나 어깨를 견주며 함께 길을 다지는 멀리 가는 발자국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