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 구해 올게

나이 든 대식가의 루틴

by dropfairy

추석 때 가져온 감을 일주일 동안 방치했더니 얼마큼은 못 먹게 썩고 얼마큼은 도려내고 먹을 만큼 되고 얼마큼은 홍시가 되었다. 사다리도 오르고 나무도 타고 장대와 톱과 망까지 이용해서 감을 땄다. 아들도 따고 엄마도 따고 할머니도 땄는데 할머니가 제일 많이 따고 엄마는 보통, 아들이 제일 조금 땄다. 셋이 순서대로 나무에 올라 웬만큼 딸 만한 감을 다 땄는데 감이 또 왔다. 얼룩덜룩 상처 난 점박이 감을 누가 줬을 것 같지도 않고 이 감은 어디서 난 걸까? 설마 그 높은 꼭대기에 매달려 있던 감들을 엄마가 모조리 일망타진한 걸까?



"엄마, 그 꼭대기에 있던 감 따서 보낸 거예요?" 전화로 물었더니, "내가 요령지게 잘 땄지. 이제 감 없다. 못생겨도 농약도 안 하고 엄청 달아." 당당하게 말하신다.


"하루에 스무 개씩 감 깎아서 회사 가져갔더니 오십견 올 것 같아. 앞으로는 제발 보내지 마세요. 하루에 한 시간씩 감 깎아서 겨우 해치웠는데 또 보내서 어제 또 깎았어요. 김치도 쌀도 마늘도 깨도 참기름도 있는데 또 보내고 또 보내고 제발 보내지 마세요. 집에서 먹을 시간도 없고 이제 많이 못 먹어요. 부탁할게요. 제발 택배 보내지 마세요." 엄마한테 카랑카랑 쏘아붙였다.


망구의 나이에 척추 유합술을 받고 딸 집에서 요양하고 있는 아버지가 걱정되어 더 보내신 걸 알고 있다. 감 하나를 보내기 위해 나무에서 따고 잎을 말끔하게 뜯어내고 꼭지를 뭉툭하게 손질하고 장갑으로 먼지를 닦아 차곡차곡 상처 나지 않게 포개어 보내는 걸 알고 있다. 마늘도 까기 힘들다고 할까 봐 일일이 까서 뽀얀 속만 보내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먹을 이가 없다.






아버지는 전라도 한정식집에 가면 한 상을 다 비우고 오셨다. 밥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다 먹어 식당 사장님이 인삼주 한 병을 선물로 내어주신 적도 있다. 소주는 됫병으로 드시고 고기도 닷 근은 예사로 드셨다.


동트기 전 찹쌀, 콩, 옥수수, 마늘, 가지 등을 있는 대로 섞어 밥을 한다. 동네를 휘저어가며 추어탕, 감자탕, 염소탕, 순댓국 등을 포장해 온다. 아들을 키웠던 경험 때문인지 특별히 힘들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대상이 아들에서 아빠로 바뀐 것뿐이니 아들에게 했던 것처럼 "먹이 구해올게."라고 말하고 먹거리를 공수해 오는 일정을 추가했다.







2인분을 시키면 처음에는 맞은쪽과 내쪽에 각각 그릇을 놓아주시던 이모님이 이제는 내 앞에 모두 모아 가지런히 놓아주신다. 건더기와 국물을 싹쓸이한 후 커피와 잉어빵을 사서 계단을 오른다. 출근길에 만난 동료들에게 잉어빵을 하나씩 나눠주다 보니 내가 먹을 잉어가 하나뿐이다. 세 개를 먹으려면 스무 개는 사야겠다.


돌이 갓 지난 아기였을 때 할아버지가 여남은 개 껍질을 깠는데 귤이 온데간데 없어졌단다. 아기가 다 먹었을 리도 없고 귤이 어디 갔는지 너무 신기해서 다시 까놓고 보고, 또 까놓고 봤더니 까는 족족 돌쟁이 아기가 다 먹더란다. 귤은 상시 한꺼번에 오십 개쯤 먹고 김은 한 톳씩 먹었다. 겨울이면 손톱과 손바닥이 황달처럼 물들고 까슬한 돌김을 백장 씩 씹다 보면 입에서 피맛이 났다.


오픈런을 해도 한 시간쯤 웨이팅이 있는 중식당에서 탕수육을 시켰다. 배추와 부추가 듬뿍 올라간 탕수육 대자는 보통 남자 네 명이 먹는 양이란다. 여자 둘이 탕수육 대자를 시키니 남는 건 포장해 가라고 사장님이 미리 말씀하신다. 여태 음식이 남아 포장해 간 적은 거의 없다. 고기와 야채로 빵빵해진 볼을 연신 우물대며 목젖을 꿀떡이면 금세 빈 그릇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내 주변에서 나보다 많이 먹는 사람은 아버지가 유일했다.






빙 돌아 마트를 얼쩡대다 아보카도 두 알을 사고 맞은편 빨간색 간판으로 향해 천 원짜리 보들보들 털장갑을 구매했다. 불빛보다 우세한 어둠 속에서 울긋불긋 색을 밝히는 가로수들이 찬란하다. 부스럭 바스락 발에 치이는 마른 잎들을 밟고 조명이 늘어난 공원을 에돌아간다. 신발을 끌며 집 앞에 도착하니 문고리에 낯선 종이백이 걸려 있었다.



바로 아랫집에서 공사하는지 시끄럽다고 하셨던 아버지 말이 생각났다. 손 편지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에 '봉인해제'가 되었는지, 롤케이크와 호두과자에 잠재워놓은 식욕이 깨어났는지 앙버터 호두과자 2줄을 순삭 했다. 살짝 뜯어놓은 900리터 우유를 비우고 감 5개, 사과대추 10알, 무화과 10개, 번데기탕과 열무김치에 맥주 두 캔을 먹었다. 냉동실을 열었더니 아버지가 못 드신 밥이 가득이다. 미역을 한 주먹 첨가해 통통한 라면을 끓이고 해동한 밥도 말았다.






"아부지가 집에 없으니까 마음이 허해서 폭식했어요. 술도 먹고 밥도 먹고 라면도 먹고 빵도 먹어서 2킬로는 찐 것 같아."


"뭣이 허하냐? 혼자 있으니 편하고 좋지." 아빠의 통화는 늘 간소하다.


"있다가 없으니까 이상해. 아빠는 이제 허리가 20대야. 날마다 만보씩 걷고 내년에는 나랑 제주도 가자." 응석받이 딸이 되어 어리광을 피운다.


"허허허. 그래 가자. 고생했고 고맙다. 아빠가 딸 응원한다. '파이팅'이다." 내년에 하프 마라톤과 트레일러닝 대회에 나가겠다고 했더니 끝마디마다 '파이팅'을 외치신다.


"아빠 드시는 양이 너무 줄었어. 딸이 열심히 먹이 구해왔는데 못 드시는 거 보고 가슴이 찢어졌다니까. 운동을 해야 소화가 잘 돼. 우리 열심히 운동해서 맛있는 거 많이 먹어요."






내년 ‘트랜스 제주’ 일정에 맞춰 부모님과 제주도에 가기로 했다. 80대 부모님과 반백세가 다가오는 딸이 오름을 오르고 맛집 투어도 하기 위해 더 부지런히 움직이고 더 좋은 습관을 다듬어 함초롬 추억을 쌓아오련다.


나이가 들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젊었을 때보다 건강하지 않아서 못 먹는다고 생각한다. 운동을 많이 한 날은 먹는 양도 늘고 힘도 더 생긴다. 일 년 전에 러닝을 시작하고 틈틈이 헬스, 필라테스, 폴댄스를 하면서 40대가 되어 반절의 반만큼 줄어들었던 식사량이 다시 늘어났다.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니 심심할 틈 없이 생활이 활기차다.


대식가 아버지도 명성을 찾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기로 약속하셨다. 아버지는 80세에 그라운드골프 심판 자격증과 지도자 자격증을 땄고 대표 선수로 마을 우승의 주역이었다. 내년 하반기 대회 출전을 목표로 재활 운동에 매진하시겠단다. 어머니 얘기는 다음 편에 할 테지만 엄마는 라인댄스 공연단의 최고령 단원이다. 내가 아는 세 번째로 많이 먹는 사람이 엄마다.


내가 실천하는 맛있게 많이 먹는 법은 많이 움직이고 더욱 건강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한 뜻으로 많이 먹고 맛있게 먹고 먹기 위해 살아가는 가족이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라니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