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빵을 기다리던 나와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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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살즘에
엄마는 새벽 네다섯시정도에
밥을 차려놓고는
머리에 차양모자에 수건을 두르고
할머니들이 있는 용달차 짐칸에 타고
어딘가를 갔었다..
그렇게 아침이 돼서 일어나면
나와 누나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엄마 보고 싶다고 울면
누나는 나를 안고 자기도 울면서
울지 마라고 달래주곤 했었다
그 당시 집엔 장난감이 없어서
엄마가 쓰는 화장품을 가지고
로봇처럼 가지고 놀곤 했었는데
그러다 오후 한 세시쯤 엄마가 오면
나와 누나는 뛸 듯이 엄마가 반가웠다
그때 엄마는 가방에서 보름달 빵 하고 우유를
나와 누나에게 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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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고, 내가 스물여섯에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두 해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어쩌다 엄마한테 전화가 오면
엄마 나 너무 힘들고 앞이 깜깜하고
불안해 미치겠다고
그만둘까 하고 얘기하곤 했는데
그때, 이런 얘길 해주곤 했다
엄마 너희들 낳고
새벽에 밭일 나가서 허리 한번 못 펴고 일하다가
왜 새참 안 먹고 가방에 넣냐고
할머니들이 물으면
그냥 입맛 없다 하고
먹을 게 없어 이거라도 니들줄생각에
창피한 줄 모르고
힘든 줄 모르고 살았는데
너희들은 왜 쫌만 힘들어도 그만둔다
힘들다 못하겠다
그런 말이 쉽게 나오는지 모르겠다,
참고 인내하다 보면 좋은 날도 있으니까
다 쉬우면 누군들 안 하겠니
엄마가 너한테 도움이 못돼 줘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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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듣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 후로 힘들 때마다
엄마의 차양모자를
생각했다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나와 누나를 낳고
낯선 용달차를 탈 때
얼마나 두렵고 떨렸을까.
이름 모를 할머니들과 함께
그중 나이가 가장 젊었을 텐데.
창피하고 부끄럽진 않았을까.
할머니들이 다들 안쓰러워했을 텐데
엄마는 어떻게 그 세월을 다 견뎠을까.
그렇게 나는 한주를 보내고
한 달을 보내고
한 해를 보내고
엄마를 생각하며
어두운 터널과도 같은
긴 시간을 견뎌냈던 거 같다
지금도 때때로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나이를 먹고
점점 나이가 드신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그렇게 강했던 나의 엄마.
나는 새벽 용달차를 탄
엄마 손에 들린 차양모자를
종종 떠올리곤 한다
사람일이 다 내 뜻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