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외할아버지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

by 밤의 작가 Mow

나의 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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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사랑한 사람도


나를 사랑해 준 사람도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깊이 사랑했던


나의 외할아버지는


차별이 없으셨다


손자들 중


누구나 할 거 없이


할아버지 집에 가면


옛날 센베이(전병) 과자를


장롱에서 꺼내


손자들에게 내어주곤 하셨다


-

할아버지는 명절날이 되면


아침 일찍


은행에 가


빳빳한 새 돈으로 바꾼 뒤


봉투마다


손자. 손녀들 이름을


한 자 한 자 붓글씨 쓰듯 정성으로 적으시고


나이순대로


천 원부터 만원까지


세뱃돈을 넣으셨다


할아버지의


손자사랑은 그러셨다.


어릴 때 받던 천 원이 삼천 원이 되고

오천 원 만원이 될 때쯤에


돈의 액수보다 기분이 좋았던 건

빳빳한 새 돈이었기에

나는 천 원짜리 몇 장이었어도

그 돈을 꺼내 쓰는 걸 아까워했었다.


스무 살 여름에 군 입대를 하고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을 때


할아버지는 버선발로 마중 나와

뛸 듯이 반가워하셨다


손자 중에


내가 군대 간 첫 손자라서 그랬는지..


아님 할아버지가 옛날


전쟁시절을 겪었던


장교출신이라 그랬는지


그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군대 얘길 하시며


처음으로 말을 많이 꺼내셨었다


나를 성인으로 인정하셨던 걸까

아님 어느새 커버린 손자를 바라보는 게

기특하고 대견하셨을까


매우 흐뭇하고 보람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맞아주시고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뵙고


나는


다시 군복무를 위해


복귀를 했다


한 삼 개월이 지났을쯤


훈련 중에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행보관이 얼른 옷부터


갈아입으러 길레


어리둥절하게 옷을 입었는데


차분하게 나를 앉게 하고는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너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으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아직 제대한 게 아니니

마음 잘 추스르고 장례 잘 치르고 오라고,


나는 우리 할아버지가


나의 아버지이자


나의 선생님이었고


나의 멘토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날 경기도에서 목포까지


기차 타고 가는 내내


나는 멍하게 창밖만 바라보았다


무언가 슬프지도 애석하지도 않은


멍한 상태로 창밖만 바라보았다


도착하고 장례를 치를 때도


나는 멍하게 있었다


그렇게 장례를 치르고


복귀해 군생활을 마무리 짓고


제대했을 때


할아버지가 안 계신다는 걸


실감했다


나를 가장 기뻐하고 반갑게 맞아줬던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던


그 모습만 나에게 보여주신 채,


할아버지는 내 곁에 계셔주시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나의 일을 시작하고


몇 년째 가족들과 만남도 피한채


내 일에만 몰두했다


얼마 전에


나는 시내에 나가


무심코 걷다


옛날과자가 놓인 평상을 보았다.


무심코 봤을 뿐인데


그 평상 과자들 속엔

할아버지가 꺼내 주시던

센베이 과자가 놓여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속 깊이 숨겨뒀던

뜨거운 무언가가 터질 것만 같았다


울컥거린 감정을 얼른 누른 채


돌아오는 길


나는 결국 몇 년간 참았던 눈물이

터져버리곤 말았다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할 때


믿었던 사람이 날 떠났을 때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모두가 나를 외면하고

오해하고 등을 돌렸을 때도


광주에 올라와 방을 구하고

천 원으로 붕어빵을 몇 개 사 먹던 그때도


사업을 시작하고

돈이 없어 하루를 굶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맛없던 센베이 과자 하나가.


나를 울렸다


왜 굳이 할아버지는 많고 많은 과자 중에

손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잘 찾지 않던

그 과자를 장롱 속에 두고 계셨던 걸까


왜.. 하필 이 과자였을까.


나는 돌아오는 내내

왜 . 이 과자였는지

할아버지에게 이 과자가 주는 의미가

무엇이었겠는 지를 점점 알게 되면서


내 눈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가난하지만 품격을 잃지 않으셨던


나의 외할아버지.


손주 사랑에 기쁘게 과자를 집어

언덕길을 오르셨을 내 할아버질 생각하니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가 장롱에서 꺼내주던 그 과자가


명절 날만되면 빳빳하기만 하고


얼마 되지 않던 그 천 원짜리 몇 장이


나를 계속 울게 했다


몇 년간 참고 참았던

나의 슬픔이 나의 억울함이

할아버지의 사랑에 그리움이 되고

그 모든 것이 녹아내려

내게 깊은 슬픔이 되었을 때

할아버지의 목소리. 버선발로

뛰어나와 날 반기셨던 모습까지

그 모든 게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게 두려워

장례식장에서도 할아버지를 보지 않았었다


그렇게 내게 할아버진 내가 보고 싶어 할

모습만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금까지 보고 싶단

말을 먼저 하지 못했다


꼭 상대방이 먼저 해주고 나서야


나도 보고 싶다 했었다


내가 먼저 보고 싶다 했는데

나를 안 보고 싶어 해 주면


너무 상심이 클 것 같아서 그랬다


숱한 애정표현도


사랑한단 말도 못 하고


표현도 서툴러하질 못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모르지만


나는 나를 안다


나는 우리 외할아버지를


너무 사랑했듯


그분의 삶을 존경했고


그분의 손자 사랑 덕에


내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할아버지가


날 보면 너무 좋아하시고


지금 날 보면 너무 대견스러워하실 텐데


그런 할아버지가 안 계신다


그래서 장례 때부터


지금까지 참아왔던 게


너무 서럽게 터져 나왔다


그렇게 그 과자가

놓여있던 자판에서부터

참았던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나는 혼자이고 싶어 하면서도


혼자이길 싫어한다


외로움이 너무 싫다.


이기적이라 나를 욕해도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할아버지 사랑 때문이었다


사람관계에서도


안들은척 하면서도

쓸데없이 기억하고


싫은척하면서도

마음으론 좋아하는


아직은 서투른 사람일 뿐인데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은


지금까지 많이 겪었어도


아직도 익숙지 않다


떠나가는 사람들이

헤어짐을 통보할 때


나는 아직도 바로 답을 못할 만큼

어떻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한다


다만,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하는 속마음을 숨긴 채


나는 ,

잘 지내란 말로 대신한다


나는 나의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이.


버선발로 마중나오시 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내 어깨를 격려하시던

우리 할아버지의

따뜻했던 손길이

너무 그립고


웃음 속에 나를 부르시던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가끔은 너무 듣고 싶다.


나는 그렇게 할아버지를

노을이 지는 걸 막을 수 없듯이


추억 속으로

보내드려야만 했다.

.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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