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학생은 어디 있어요?

by 클레어

보건소 직원의 말에 순간 멈칫했습니다. 엑스레이 접수증을 내밀던 나는 분명 학생 본인인데, 그분 눈에는 보호자로 비쳤나 봅니다. 학생의 엄마로 오해한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웃음이 나왔습니다.


“학생이요? 바로 접니다. 다 큰 학생 여기 있습니다.”


내 대답에 직원의 얼굴에는 당혹감과 미안함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나도 살짝 무안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그 짧은 대화는 왠지 모르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언제나 크고 무거운 노트북 가방은 나와 함께 합니다. 대학 졸업 이후 배움은 계속되었어요. 컴퓨터 OA, 피아노, 장구, 사회복지사, 평생교육사, TESOL(외국인 영어 교수법), 영어목회 교육 등 다양하게 선택했습니다. 지속적인 학업은 화려한 경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맡은 일을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현재는 박사과정 중입니다. 공부한다는 말에 사람들은 종종 묻습니다.

왜? 뒤늦게 교수하려고?

중년에 박사가 무슨 소용이 있어?

등록금이랑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나?


왜(Why)라는 질문에 “그저 배우고 싶어서 배워요.”라고 답을 하곤 합니다. 중년의 배움은 긴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계속적인 학업의 이유는 아쉬움이고, 갈망이며, 기쁨입니다.


박사 과정은 오래 미뤄둔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미뤄둔 학업은 체증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쉼 없이 공부하고 일했지만, 마치 꿰지 못한 구슬을 품고 사는 듯했거든요.

2021년 겨울, 모교의 입학전형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는 미루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흩어진 구슬을 이쯤에서 꿰어보자고, 용기를 내라고 다독였습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대중가요의 한 소절처럼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년의 공부는 젊은 날과 정말 다르거든요. 침침해진 눈에 돋보기를 걸치고 작은 활자에 매달려야 하고, 한 두시간 책상에 앉으면 몸이 여기저기 쑤시고 삐걱거립니다. 게다가 AI시대 논문작성은 편리함과 유익함도 있지만 여러 도구들을 숙지해야 하는 부담스런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 고단함 속에서의 학업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결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배움은 용기의 씨줄과 수고의 날줄이 하나의 쓸모 있는 조각을 만들어 갑니다.

몇 년 전 보건소 직원의 물음이 다시 떠오릅니다. 그 대화는 짧았지만 강렬했고 오래도록 남겨진 울림입니다. 학생 신분을 ‘나이’로 규정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중년의 학업은 또 다른 ‘창’을 열어보는 '기대' 하겠습니다. 그 창을 통해 나와 세상을 새롭게 봅니다. 나이 듦은 걸림돌이 아니라 낯선 땅을 내딛게 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배움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나와 당신의 선택이 누군가의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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