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을 찾아서 ~ing
지금 눈앞에는 마라톤 부상 회복, 임플란트, 민사소송, 집 누수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은 잘 해결될 것이며, 예상한 대로 흘러갈 것이다. 변수가 생기면 그에 맞춰 대처하면 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집중해야 할 이슈는 무엇일까? 바로 나의 ‘배우자 찾기’다. 요즘 “세상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라는 말을 몸소 체감하고 있다.
30대 초반, 친구들보다 뒤늦게 시작한 사회생활이 재미있었던 나는 철이 없었나 보다. 회사 생활을 하며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고,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그 시기에 연인이 된 사람과 많은 추억을 쌓았다. 상대가 결혼 의사를 먼저 내비쳤을 때 나는 속도에 맞춰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을 핑계 삼아 결혼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놀고 싶어 했다. 결국 타이밍이 엇갈려 이별하게 되었다.
이후로 연애를 계속해 오면서 “결혼해야겠다”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형이 특별히 뛰어난 것도 아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인 만큼, 평범한 사람을 찾을 뿐이다. 하지만 ‘대화의 결’은 꼭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를 하면서 대화할수록 서로에게 빠져들고, 하루 종일 대화해도 즐거운 이성이 있다. 잠들기 전부터 새벽 5시 러닝하러 가기 전까지 밤새 통화해도 대화가 즐거운 사람도 있었다. 물론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 선한 사람.
(오랜 시간 베여있는 선함은 착한 척과는 다르다)
■ 차분한 사람.
(이런 이성과 대화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편이다)
■ 서로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는 사람.
■ “나는 원래 이래”라는 마인드보다는, 서로 노력하며 좋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사람.
■ 감정 표현에 아낌없는 사람.
■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
■ 비혼, 딩크가 아닌 사람.
■ 기독교이면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30대 중반까지는 만나는 이성의 직업이 같았다. 사회 초년생 때 만났던 연인의 직업은 지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별 후에는 비슷한 사람을 소개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무심코 같은 직업만 만났던 기억이 있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는 특정 직업만 좋아하고 만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요즘도 소개팅은 계속하고 있다. 그중에 함께할 사람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가끔은 퇴근 후 계속되는 소개팅에 살짝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소중한 내 인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학부 시절 심리학으로 유명한 교수님의 강의를 2년 동안 들은 적이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는 ‘가족관계 심리학’이었다.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에서 시행착오를 줄여줄 것 같아 열심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상급종합병원에서 임상 심리 상담을 하셨던 분이라, 실제 사례에 이론을 곁들인 강의여서 지루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가족이란 결국 “도망칠 수는 없지만 변화할 수 있는 곳”이라는 말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자신만의 가족을 꿈꿀 때, 어떤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가? 나는 평범한 일상을 공들여 쌓아가고 싶다.
소통이 자연스러운 집,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집, 감정의 온도가 느껴지는 집. 식탁에 앉아 대화하는 풍경, 서로의 하루에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 주는 시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미루지 않고 곧장 앉아 이야기를 풀어가는 소박한 용기. 그런 가정에서 살고 싶다. 서툴러도 자꾸 배우면서 내 단점도 누군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육아에 있어서는 과한 사랑도 부족한 사랑도 아닌 중간을 유지하고 싶다. 그리고 아이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면서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아버지의 세계로 이동해 자신의 능력으로 어머니의 세계를 구현하고, 다시 부모와의 관계를 건강하게 재설정하는 과정까지 함께하고 싶다.
이제는 30대 초반의 철부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 ‘조금 더 견고한 가족’을 세워 나갈 준비를 마쳤다. 누군가와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지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진짜 대화,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따뜻함. 이러한 것들이 결국 내가 꿈꾸는 삶이며, 앞으로의 가족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