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객이나 협업 상대가 크리스천일 때가 있다. 나는 신학 공부를 취미 삼아 하고 있어서 설교나 교회 이야기를 꺼내며 금세 가까워지곤 한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면, 상대방이 조금 더 쉽게 마음을 열어주는 것을 느낀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크리스천인 고객과 즐겁게 대화한 끝에 고객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믿음 있는 사람끼리 화이팅 해봐요.”
그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종종 종교를 내세워 관계를 좁히는 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믿음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오히려 내 마음을 시리게 만들었다. 죄책감. 그래, 그것은 분명 죄책감이었다.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단순히 신앙이 아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배우고, 철학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함이다. 어차피 철학이나 신앙이나, 결국은 같은 진리를 추구하는 길 아닌가.
하지만 나는 때때로 이 회색지대를 이용해 사업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원가를 조금 높게 말해 마진을 방어하거나, 납기를 길게 잡아 미리 발주를 받아내는 경우다. 그렇다고 아이템이나 서비스를 속인 적은 없다. 다만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 내 생존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사소한 여유 공간을 만드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 하는 작은 거짓말은 용서될 수 있는 걸까? 순백의 거짓말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하며 산다. 심지어 어떤 거짓말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사람은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상을 탔다고 한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는 ‘나는 결백하다’라는 말 속에 철학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세상에는 흑과 백이 있지만, 그 사이에는 반드시 회색지대가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흑이고 어디까지가 백인지, 그리고 그 중간 어디쯤이 ‘회색’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느냐다. 흰색에서 검정으로 이어지는 그라데이션 속에서 과연 누구를 ‘순백’이라 부를 수 있을까. 작은 티끌 하나라도 묻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죄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해 회개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