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말
연말이 되면 마음이 묘하게 뒤숭숭해진다. 어떻게 된 게 한 해도 거르지도 않고 꼭 그렇다. 특별히 큰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한 해를 잘 살아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지나간 일들을 굳이 하나씩 꺼내어 복기하게 된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연말이라는 이유 하나로 한꺼번에 고개를 드는 느낌이다.
이 시기엔 유난히 ‘안부’라는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사람들이 문득 생각나고, 연락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괜히 휴대폰을 들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한다. 지금 연락하면 너무 뜬금없을까, 혹시 부담스러워하진 않을까, 별 생각이 다 든다.
사실 안부라는 게 꼭 대단한 말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닌데 말이다.
‘잘 지내는지, 잘 지내시는지’, 이 짧은 문장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그나마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일이 가장 쉬운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어렵다. 자주 연락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보면 늘 비슷한 말만 주고받았다. “식사는 잘 챙겨 먹었어?”, “감기 조심해.” 연말이 되면 그 말들 사이에 조금 다른 감정이 섞인다. 올해는 별 탈 없이 지나갔는지, 혹시 말하지 못한 아픔은 없었는지, 괜히 한 번 더 목소리를 확인하게 된다. 안부라는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이럴 때 실감한다.
남편에게 묻는 안부는 또 다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지만, 그래서 더 쉽게 지나쳤던 말들. 연말이 되면 괜히 한 해를 함께 건너온 시간이 떠오르고, 고맙다는 말이나 미안하다는 말을 뒤늦게 꺼내게 된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올해도 고생 많았어”라는 말 한마디가 새삼 마음에 오래 남는다.
올해는 친구의 안부를 묻는 일을 미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용기 내어 미리 연락을 해둔 덕분에 연말이 되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은 친구에게 연락할까 말까 괜히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됐다.
연말의 안부에는 그만이 주는 묘한 온도가 있다. 평소보다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약해져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 잘 지낸다는 말속에 사실은 ‘그럭저럭 버텼다’는 의미가 숨어 있어도 이해받을 수 있을 것 같은 시기다.
그래서일까. 이맘때쯤이면 괜히 연락이 닿은 사람 하나만 있어도 마음이 조금 놓인다. 대단한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서로의 근황을 길게 공유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아직 서로의 삶 어딘가에 이름이 남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연말의 뒤숭숭함은 아마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이 잠시 쉬어갈 자리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후회, 아쉬움, 다행, 감사 같은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오니 마음이 조용할 틈이 없다. 그래서 관계를 떠올리고, 안부를 생각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문득 오늘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안부를 묻는 건 상대를 위하는 일 같지만, 사실은 나 자신에게도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이 아닐지.
연말에는 괜히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너무 오래 망설이지 않으려 한다. 잘 지내냐는 한마디가 생각보다 많은 걸 정리해주기도 하니까. 답장이 오지 않아도, 대화가 길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연말의 안부는 그렇게, 부담 없이 건네고 조용히 받아들이면 되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