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어 내 엄마품을 떠나다
4월의 마지막 금요일 저녁, 골든위크가 시작하는 날이었다. 아기를 만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하네다로 가는 택시를 탑승한 남편이 한국에 먼저 나와있던 나에게 전화를 했다
미안한데… 아무래도 공항에
수속 시간 맞춰서 도착하기 어려울 거 같아
골든위크였다! 이 비행기를 놓치면 다음번 한국행 좌석은 출산 후로나 가능했다. 우리의 주니어를 혼자 맞이할 순 없다는 생각에 공항에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했다. 초인의 힘이 발휘된 거라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남편이 도착할 때까지 게이트를 잠그지 않았다고 한다.
토요일 새벽 2시가 다 되어서 집 근처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남편을 픽업했다. 배가 거의 운전대에 닿아있는 만삭의 아내를 늦은 밤 나오게 만들어 미안해하는 남편을 옆에 두고 나는 드디어 내 보호자와 함께라는 안도감과 반가움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부른 배로 이삿짐을 쌌다. 예정일을 한 달쯤 남기고 나는 한국으로 왔고, 남편은 싱가포르에서 이삿짐을 보내고 또 일본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출산 휴가 3개월을 조건으로 이직했던 남편과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에 설레이는 한국 생활을 나의 눈물로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리원에서 2주 그리고 우리의 공간에서 2달쯤 달콤했던 세 가족의 허니문이 끝나고 남편은 도쿄로 돌아갔고 다시 한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다. 싱가포르에서 이삿짐이 도착했고 아이와 들어가면 당장 필요한 가전도 채워 넣었다.
신생아와의 이주는 내가 여행 가방에 여름 옷가지만 싸면 되었던 싱가포르때와는 달랐다. 젖병과 분유는 가방에 메고 곧 들이닥칠 겨울을 위한 이불은 짐가방에 넣었다. 반면 한국에 있는 짐들은 모두 정리해야 했다. 아이와 지내며 매번 나눔글을 올리는 거도 힘들었지만 한참을 치웠음에도 우리가 떠나고 나서 집정리를 도와주신 친정 식구들이 하루 종일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아이의 백일이 지나서 남편이 휴가 겸 한국에 왔고 우리는 다 같이 도쿄로 향했다. 아기띠 속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내 엄마의 품을 떠나는 걸 비로소 실감하며 눈물 속에 반짝이는 도쿄의 야경을 마주했다. 초가을이지만 습하고 더운 기운이 가시지 않은 밤공기를 내미는 두 얼굴의 도쿄로 우리는 두 번째 해외이주를 하였다
그 날은 우리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