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눈물 또 눈물
아기띠를 하고 면접 장소 근처 카페로 향했다. 오후 업무 중 조퇴하고 와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느라 아기띠를 풀자 혹시라도 면접용 블라우스를 더럽힐까 대놓은 가제수건이 떨어졌다. 면접 보는 회사 앞이라 누가 나를 볼세라 서둘러 자리를 떴다.
출산 후 첫 면접이었다. 재킷 단추가 잠기지 않아 팔에 걸치고 블라우스와 구두는 어색했지만 임신 기간 내내 취준생이었던 덕분인지 대화는 순조롭게 흘러간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휴가를 한번 더 부탁하기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같은 날로 몰아둔 두 번째 면접을 위해 남편과 아이와 택시로 이동했다. 이번엔 남편의 셔츠 위로 단단히 채워진 아기띠가 있다.
두 번째로 보게 된 면접은 분위기가 좀 달랐다. 본인이 뽑는 자리라면서 아이 맡길 데는 정한 거냐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상사가 있었다. 내 아이를 향한 부정적인 말투에 저 회사는 되더라도 가지 말아야겠구나 싶다. 아이 엄마란 걸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취준생이지만 나는 내 아이를 지키는 엄마였다.
의외로 두 회사 모두 합격이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더 가고 싶어 하던 회사가 연봉도 대우도 더 나았다.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닌 일본이지만 남편의 퇴근길에 롯폰기 힐즈에서 예쁜 케이크를 구입해서 아이와 첫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파티를 하고 다음날 고용계약서에 사인도 했다.
결혼 임신 출산을 거치며 전 회사 동료들의 재취업 소식을 전할 때마다 처져가던 어깨가 다시 쭉 펴지는 것 같았다. 꼭 가보고 싶던 긴자의 天ぷら屋(てんぷらや, tenpuraya)에서 저녁을 먹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도쿄에서의 재취업 성공을 마음껏 기뻐했다. 다시금 펴지던 어깨를 들썩이며 울게 될 줄은 웃음이 가득하던 그 짧은 며칠 동안은 예상하지 못한 채…
당시 우리가 살고 있던 동네는 한국의 어린이집과 같은 保育園(ほいくえん / hoikuen)시설이 많이 부족한 지역이었다. 닥치게 될 현실을 얘기하던 여자 상사의 목소리가 머릿골을 울렸다. 도쿄에서 나는 소위 비빌 언덕 하나 없는 혈혈단신 우리 셋 뿐이었다. 손에 고용계약서를 쥐고 구청과 같은 개념인 区役所(くやくしょ, kuyakusho)를 찾아가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없음을 설명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막막하고 답답했다. 도쿄에 간지 세 달밖에 안되었지만 다행히도 나에겐 맘카페를 통해 알게 된 고마운 육아동지 친구들이 있었다. “육아“라는 끈끈한 ”전우애“로 엮인 든든한 내 편들이었다. 어쩌면 일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눈물샘이 마를 새가 없는 나와 같이 울며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그녀들이 함께 알아봐 준 덕에 암흑 같은 시간을 지나 아이를 맡아주실 이모님을 기적적으로 모실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구야쿠쇼에서도 호이쿠엔에 자리가 생길 때까지 이모님을 보내주겠다는 연락도 왔다. 내 커리어에 드디어 빛줄기가 들어오며 나도 도쿄의 워킹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