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은 처음입니다

일본 회사생활 공기를 읽어라

by 여행같은일상

「空気を読む」(くうきをよむ, kūki o yomu)

입사 후 나의 일본인 보스가 제일 먼저 했던 이야기는 분위기 파악이었다. 일본 사회가 그렇듯 회사에서도 겉모습과 대화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해서 긴민히 움직이는 눈치가 제1 덕목이다.


미국 유학 시절 열흘쯤 만났던 일본인 남자 친구가 내 인생에 유일하게 알고 지낸 일본인이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나 먼 일본인들과 그들의 사회에서 일본어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도쿄 오피스가 내 직장이 되었다.


도쿄 거주 5개월째 그전에는 여행 온 게 다였던 일본이라는 나라였다. 이 나라의 특별한 편의점 유통과 소비자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 나라에 제품을 출시하는 마케터가 되었고 설상가상 나는 사용한 적도 없는 낯선 제품이었다. 다행히도 나에겐 이미 5개국을 경험해 본 생존능력이 탑재되어 있었다.


출근한 첫 주 팀워크샵 다음 날 전체 이메일을 보고 나는 또다시 무너졌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팀원 중 한 명이 코로나 밀접접촉자이니 열흘간 격리를 하라는 안내였다. 일주일만 늦게 출근할걸…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내가 위험에 빠뜨린 거 같았다. 아기와 엄마의 격리란 건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세 가족은 어쩔 수 없는 농후 접촉을 하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격리기간이 끝나고 출근을 재개할 때까지 다행히도 가족들 모두 아무 증상 없이 지나갔다. 이번엔 격리가 아닌 사회적인 분위기로 모든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시행키로 하였다. 전 회사에서 일할 때 출장이 잦았던 만큼 리모트 업무도 익숙한 편이었다. 우리 부부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일도 하고 밥도 먹고 같은 회사에 다니던 연애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모님이 계실 때는 비교적 편안한 생활이었다. 재택의 단점인 정해진 퇴근 시간이 없던 내가 업무가 끝없이 이어져서 저녁 준비를 하면서도 전화 회의를 계속해야 했지만 남편이 아이를 케어하면 되었다. 주말이면 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우리는 꽤나 만족스러운 맞벌이 라이프를 즐겼다. 하지만 평온함은 곧 불안함이 돼버리고 만다.


처음엔 이모님이 전보다 잘 웃지 않으셔서 힘드신가 했다. 어느 날 아침 이모님이 출근하실 때 아이가 뛰어나갔는데 그런 아이를 본체만체 지나치셨다.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라도 이모님의 차가움에 아이가 상처받을까 그날부터 나는 이모님 없이 아이를 끌어안고 전화회의를 시작했다.


급하게 파트타임 이모님 두 분을 모시게 되었다. 호텔에서 하우스키핑 일을 하시고 아이는 돌본적이 없으셨던 분과 현재 유치원에서 음악 보조교사를 하시는 분이라 시간이 없는 분이었다. 두 분 다 내 급한 사정을 아시고 요일을 달리해서 파트타임을 와주기로 하셨는데 한 분이 병으로 수술을 하시게 되어서 이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이모님이 안 계신 날에 애를 보면서 재택근무는 무리였다. 아직 아이가 두 돌밖에 되지 않으니 동네에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딱 한 군데였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하루에 1시간씩 걸리는 오르막 길을 왕복해야 했지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란 게 이런 걸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마침내 우리에게 폭풍우가 들이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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