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했던 여름 전쟁 같던 겨울

출가외인

by 여행같은일상

두줄이었다. 피식 웃음이 새 나왔다.

초보 워킹맘은 업무와 언어가 모두 바뀐 상황에 1년 내내 고군분투 중이었다. 둘째 생각을 할 새가 없었지만 깜짝 선물로 찾아와 준 아기 천사가 고마웠다..


신제품 출시를 두어 달 앞둔 최고로 바쁜 시기였고, 이모님 눈치 보랴 우는 아이 유치원 등하교 시키랴 병원에 가볼 새도 없었다. 뒤늦게 쉬어가라는 신호를 몸이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병원에서 의사는 감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2주 후에 다시 오라고 한다. 주사를 놔주거나 안정을 취하라는 얘기도 없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고 지켜보다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식이었다. 회사에도 관련한 휴가나 배려는 보이지 않았고 개인 휴가를 써도 좋다는 얘기로 내 죄책감과 절망을 위로할 순 없었다.


빨래를 정리하려 일어나다 갑자기 배를 찌르는 통증과 함께 무언가 느껴져서 화장실로 뛰어갔다. 생물학 전공서적에서 봤던 아기집의 형태가 휴지에 묻어 나왔다. 생전 처음 보게 된 충격적인 모습에 멍한 채로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다 나를 쳐다보던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다


나는 차마 버리질 못했던 휴지를 정리한 남편도 나를 안고 같이 눈물을 흘려주었다. 무슨 상황인지 몸이 알려주기라도 하듯 한기가 돌며 뼈마디에 바람이 드는 싸함이 느껴졌다. 더 높아진 내 울음소리에 아이가 놀랄까 봐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새 떨었고 남편은 그날 이성을 잃은 나 대신 아이 곁을 지켜주었다.


나는 혼자였고 너무 지쳤고 내 엄마에게 가고 싶었다


회사에 무턱대고 한국 오피스로 옮겨달라고 얘기했다. 상황을 알게 된 디렉터와 인사팀 면담을 거쳐 사장님 승인을 받고 마침내 2달간 한국에서 재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가 창궐하던 때 각종 서류와 격리를 거쳐 방문한 한국은 더 이상 내가 그리던 따뜻한 친정은 아니었다.


들쭉날쭉 바뀌던 양육 환경에 아이는 불안을 느꼈는지 몹시 예민했고 끊임없이 울었다. 한국에 와있긴 했지만 업무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난 일본집이 아닌 부모님 집 방 한 칸에서 똑같은 생활을 반복 중이었다. 눈치 보며 일하고 우는 아이를 놀이학교에 억지로 등원시키고 남편까지 데리고 와있는 짐 같은 출가외인이었다.


전쟁 같은 두 달이 지나고 이상하리만큼 홀가분한 마음으로 도쿄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리타 공항 옆 호텔에서의 1주일 격리도 할만했다. 떠날 땐 지옥 같은 마음이었는데 어느새 도쿄집은 아늑한 내 보금자리가 되어있었다. 세 식구의 일상은 다시 흘러갔다. 아이는 여전히 이모님과 동네 보육원을 번갈아 다니며 4월부터 시작하는 유치원의 ねんねんしょう(넨넨쇼)를 지원했다.


일본의 유치원은 매년 4월 1일 만 나이를 기준으로 3살부터 갈 수 있다. 넨쇼 年少(ねんしょう)넨츄 年中(ねんちゅう)넨쵸 年長(ねんちょう)만 3세부터 5세 반까지 3년 과정이며 4월 1일 기준 만 6세가 되는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지난해 4월 2일생부터 올해 4월 1일생까지가 같은 학년이 되는 식이다. 이런 나이제도 때문에 4월 초 예정일인 아이를 제왕절개로 3월 말 생일로 낳는 엄마들도 있다.


우리 아이는 4월 1일 기준 만 2살이었기에 年少

ねんしょう(넨쇼)가 아닌 프레 코스로 특별히 짜인 사립 유치원의 ねんねんしょう (넨넨쇼)로 입학하기로 하였다. 코로나로 이모님을 집으로 모시는 가정 보육을 택해 우여곡절을 겪던 우리는 결국 조금 더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기관에 아이를 일찍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이의 본격 사회생활을 앞두고 국제학교도 저울질했지만 일본어와 영어를 병행할 수 있고 공부보다는 아이의 신체활동에 더 초점을 맞춘 스포츠 유치원으로 정했다. 원복도 구입하고 오리엔테이션도 다녀오고 설레는 맘 긴장되는 맘으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 깃든 봄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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