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떠나기로 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을 설렘에 문득 생리 날짜가 다된 걸 생각해 냈다. 쭈뼛쭈뼛 테스트기를 사긴 했는데 결혼식 당일 아침 두 줄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두 줄을 확인한 순간부터 시작된 헛구역질에 오렌지 주스를 물고 웨딩헤어를 간신히 견디고 빵빵한 아랫배의 기분 나쁜 느낌에 드레스를 더 조이지도 못했다. 식전 사진촬영에서도 작가님께 양해를 구하며 쉬는 시간을 가지고 식후 행사 때 축배는 입술만 축이고 마시지도 못했다
결혼식 다음날 종로구청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우리는 바로 산부인과를 찾았다. 전날까지 화려한 꽃장식에 둘러싸인 “신부님”이던 나는 헐렁한 진찰복의 “산모님”이 되었다.
선견지명이었는지 우리가 결혼식을 올린 시기가 가고 싶던 신행지인 하와이의 비수기여서 좋을 때 가자며 예약을 미뤄둔 터라 신행은 예정에 없었다. 깜짝 이벤트로 신혼의 설렘을 가질 여유도 없이 임신 극초기이긴 했지만 6시간 비행을 감행해 싱가포르로 돌아왔다
더운 날씨 탓인지 동치미가 미치도록 먹고 싶던 것만 빼고는 입덧도 이벤트도 적당했다. 다만 30만 원이 넘는 진료비를 매번 결제할 때마다 싱가포르의 의료비에 부담감을 느낀 우리는 여기가 최종 정착지는 아님을 생각하며 다음 종착지를 막연히 그리고 있었다
쉬엄쉬엄 하지만 쉬지 않고 취업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날 면접을 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던 중 거울을 보게 되었다. 헐렁한 블라우스는 그렇다 쳐도 이미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에 든 탄산수까지 거울 속의 나는 누가 봐도 임산부였다. 면접을 어떻게 치렀는지도 모르게 나는 혹시라도 입덧을 할까 긴장했고 면접관의 시선이 내 배로 올까 조급해졌다
부모가 된다는 기쁨과 동시에 고민이 많아지던 우리는 매일 저녁 식사 후에 밖으로 나갔다. 저렴한 로컬 마사지샵에서 발마사지를 받거나 하루의 일과를 나누며 콘도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동남아 라이프를 만끽했다. 수영을 마치고 따뜻한 자쿠지에 앉아 긴장이 풀릴 때쯤 파트너가 이야기를 꺼낸다.
일본으로 갈 기회가 있을 거 같아
의료비도 무료이고 공립교육도 수준 이상이라 우리 아이에게도 싱가포르보다 나은 곳일 거 같은데 일본으로 이주를 생각해보지 않을래?
모두 같은 해에 일어난 일이었다.
멀쩡히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고, 싱가포르로의 이주를 생각하며 해외발령 오퍼를 거절하고, 결혼식을 치르고 임산부 취준생이 되어 일본 이주를 통보받기까지 1년이 안 걸렸다.
싱글이던 나에게 내 옆자리에 한 명 내 뱃속에 한 명 숨이 턱에 차오르는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