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도 하나보단 둘이 낫다
관. 광. 비. 자
잘못된 건 직감했지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나라든지 해외 취업에 가장 큰 어려움은 회사 입장에서 비용을 감당하며 외국인 노동자의 비자를 서포트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증명해 보이는 거다. 많은 경우 어찌해 볼 여지도 없이 회사는 그런 부담을 원천봉쇄 해버리기도 한다
인사팀과 통화가 끝나고 모든 건 없던 일이 돼버렸다. 최종 임원면접 일정이 잡히기는커녕 그 어떤 연락도 없었다. 취업 성공이라 믿었던 모두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한 달간의 싱가포르 구직활동에도 소득 없이 한국에 돌아왔고 그즈음 중국팀의 오퍼레터도 도착했다. 손에 쥘듯했던 실패는 쉽게 포기되지 않았고 나는 결국 내 커리어를 이어갈 마지막 카드를 내 의지로 버렸다. 때마침 남자 친구의 한국 출장이 잡혀 우리는 한국에서 마주하였다
싱가포르로 가자.
그리고 부모님께 인사도 드리자
싱가포르의 취업 비자인 EP 가 많이 줄고 있는 추세라며 여자친구가 관광비자만 아니었어도 취업이 되었을 거란 동료들의 이야기가 있던 모양이다. 내 취업 실패를 비자 탓이라 생각한 그는 내 비자 형태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30대 후반 커플의 결혼은 전략적 파트너십에 가까웠다.
어느 해변 리조트에서 웨딩을 이야기할 정도로 축제 분위기의 가족들과 모든 것을 생략하겠다는 당사자들 간에 온도차가 있었다. 중간 협의점을 찾은 나는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싱가포르를 드나들며 구직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웨딩플래너와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결정하며 아름다운 가족웨딩 또한 기획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열흘 앞두고 우리는 한국에 입국하였고 숨 가쁜 일정을 진행해야 했다. 웨딩플래너를 만나서 최종 점검 및 드레스를 고르고 헤어를 준비하고 하객들 식사메뉴를 결정하였다. 깜깜한 취준생에서 한시적으로나마 화려한 신부님으로 일탈이었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전까지는 난 그저 행복한 신부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