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숙집에서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이곳에서도 매일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특히 가족들 사이에서 나 때문에 싸움이 벌어질 때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다. 내가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는지, 이곳에 머물 자격이 있는지 한참 고민한다. 아무리 가족 같은 사이라 해도, 나는 결국 이방인이니까.
어제는 부모님이 아세니를 크게 꾸짖었다. 아세니가 짧은 바지를 입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을 못마땅해한다.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 옷차림 하나에도 생각이 어긋날 수밖에 없다. 스리랑카 복식도 개방적으로 바뀌는 추세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짧은 하의를 잘 입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거리낌 없이 입는다. 아세니도 그런 변화를 누려보고 싶을 것이다.
반면 나는 스리랑카 길거리에서 불쾌한 일을 당한 적이 많아 노출을 자제한다. 그런데 엄마는 내 옷차림을 구실로 아세니에게 "한국에서 온 언니도 저렇게 입고 다니는데, 너는 왜 그렇게 멋을 부리려고 하니?"라며 잔소리를 했다. 저렇게 입는다는 게 칭찬인지 놀리는 건지 아리송했지만, 아마 좋은 의미로 말한 것 같다. 나한테는 "네가 아세니에게 그런 옷 좀 입지 말라고 말해줘."라고 부탁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 저도 아세니 나이 땐 입어 보고 싶은 옷이 많았어요. 한국에서 실컷 입어봐서 지금은 미련이 없어요. 아세니도 이것저것 입어보면서 자기에게 편한 스타일을 찾을 거예요. 아세니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안 될까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져요."
"아이고, 한국에서 아주 좋은 언니가 왔네."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그래도 나의 말이 엄마에게 영향을 주긴 했는지, 그 이후로 적어도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아세니의 옷차림을 문제 삼지 않았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아세니에게는 내심 미안했다. 이 집의 진짜 딸인 아세니가, 한국에서 굴러들어 온 수양딸 때문에 괜히 꾸지람을 듣게 된 것 같아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오늘은 아세니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함께 걷는 길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내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영화를 봤다. 그리고 아세니가 좋아하는 한국 분위기의 옷 가게에 들렀다. 한국 아이돌 가수들이 입을 법한 화려한 옷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는데, 아세니는 부모님이 싫어할 만한 짧은 치마를 만지작거리며 언젠가 이런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집에서는 짧은 옷 위에 긴 옷을 걸쳐 입은 다음, 밖에 나가서 겉옷을 벗어버려!" 아세니가 그렇게는 못 한다며 웃었고, 그 웃음을 보니 나도 마음이 놓였다.
아세니와 함께한 시간은 즐거웠지만 또 다른 고민이 따라붙었다. 밖에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면서 3만 원 남짓 썼다. 이곳 사람들의 평균 월급이 25만 원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한국에서 온 내게도 스리랑카 물가는 살벌하게 느껴지는데, 현지인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2022년, 스리랑카는 국가부도로 무너졌다. 물가가 급등해 서민들이 살기 어려워졌고, 나라 살림은 관광 수입에 의존하며 버티고 있다. 관광지에서 내국인과 외국인 금액을 차등 적용하며, 외국인이 돈을 많이 흘리고 가길 바란다. 과연 그것만으로 스리랑카가 일어설 수 있을까.
거리를 걷다 보면 구걸하는 사람을 쉽게 만난다. 외국인은 큰돈을 줄 거라는 암묵적인 기대가 느껴진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저 외국인이 얼마큼 정을 베풀까 기대한다. 하지만 나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쥐여주는 것은 더 큰 의존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몰인정한 사람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대신 마음으로 손을 붙잡고 자애를 보낸다. 이게 스리랑카를 지키는 방법이 맞길 바라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도 따위로 배가 부를 리는 없다.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한 건 지금 당장 먹을 한 끼 식사일 테니까. 외국인 여행자들이 단 하루 만에 그들의 월급만큼을 써버리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박탈감과 무력감이 미래를 꿈꿀 수 없게 만들고, 결국 길가에 나앉게 만드는 건 아닐까. 가끔은 나 같은 외국인의 존재가 스리랑카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며칠 전 하숙집에 걸인이 찾아온 적이 있다. 엄마는 그동안 매번 돈을 줬지만, 그 돈으로 술을 사 먹는 모습을 보고 이제는 돈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식탁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걸인에게 돈을 주는 게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
"매일 만나는 거지에게 돈을 주다가 하루는 지갑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더니 욕하면서 돌을 던지더라고. 그날 속상해서 한참을 울었어. 그동안 쓸데없이 연민을 느끼고 돈을 낭비했구나 싶어서."
"그래도 난 돈을 줄 거야. 술을 마시건 도박을 하건 그 사람이 짓는 업이야. 우리는 선량한 마음으로 돈을 줬으니 선한 업을 지은 거지. 이미 손을 떠난 돈의 행방을 쫓으면 안 돼."
"선행을 빌미로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기부만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벌어질 일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지 않겠어요?"
스리랑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일회성 자선보다는 자립의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믿음은 장애인 학교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겪은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시설 개보수나 교육 기자재 같은 물리적 기반을 지원해 줬지만, 그것만으로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봉사자와의 교류가 자존감 회복에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경제적 자립으로 이어지진 못했기 때문이다.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도 배운 것을 써먹을 일자리가 없으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지속 가능한 수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하루 한 끼 식사를 주는 것보다 스스로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더 이상 손을 뻗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 방법은 격려에서 시작하여 자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 목적으로 공정무역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아직은 지혜가 부족해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다. 한국에서 굴러온 내가 이 섬에 불필요한 소란을 만드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기도 하다. 내가 해주고 싶은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다를 때마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빠진다. 당장의 절실함을 외면하는 일은 마음 아프지만, 가난의 근본을 없애기 위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부디 이 모든 고민이 상처가 아닌 희망으로 남기를 바랄 뿐이다.
아세니에게도, 거리의 걸인에게도, 이 작고 아름다운 섬나라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