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1591년 어느날, 한양 경복궁 근정전

by HistoryFile


1591년 어느날, 한양 경복궁 근정전


근정전 안,

커다란 어좌 앞에는 상소 두루마리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전하께 아룁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마지막은 언제나 비슷했다.


“백성들이 지쳐가고 있습니다.”


선조는 무겁게 상소들을 한 장, 한 장 펼쳤다.

종이 마다 담긴 글씨는 검게 번져 있었고,

글자 사이, 사이에는 굵은 한숨이 스며들어 있었다.


“성이 높아질수록, 백성들의 원성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부역은 끝이 없고, 농토는 버려졌습니다.”

“사족들은 체면을 잃었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유생들은 향교를 떠나 산으로 숨습니다.”


글씨를 읽어 내릴수록

선조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그날의 조회는 무거웠다.

대신들이 차례차례 앞으로 나와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축성은 분명 절실하오나,

백성들의 피폐함이 도를 넘었다 하옵니다.

유생들마저 충군 되어 집안이 무너졌다 하니,

사족들이 성토하는 소리가 날로 커져가고 있사옵니다.”


“전하, 부역을 피하려 산속으로 도망치는 자가 늘어나고,

밭은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성을 쌓아 나라를 지킬지언정,

백성이 남지 않는다면

그 성이 무슨 쓸모가 있겠사옵니까.”


대신들의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선조는 어좌에 앉아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차분히 입을 열었다.


“짐도 안다.”


왕의 목소리가 낮고, 길게 울렸다.


“이 나라는 이백 년 넘게 큰 전란을 겪지 않았다.

백성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전화가 무엇인지 잊고 있다.

짐도 그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고 싶다.

허나 대비를 멈출 수는 없다.

그러니 살펴서 계속 시행하되 너무 몰아치지 말라 명하라.”


그는 말을 마치고 어좌의 팔걸이를 굳게 움켜쥐었다.


조회가 끝난 뒤,

전각 밖으로 나선 신하들은 서로 낮게 속삭였다.


“전하의 뜻은 알겠으나, 민심이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네.”


“전쟁을 준비한다 하여도,

백성의 원망은 칼보다 무서운 법일세.”


“일전에 형편에 맞게 하라 하시지 않았는가?”


“너무 급하면 탈이 생기는 법이지.”


멀리 북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그 소리는 마치 나라의 숨결처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리듬은 점점 더 거칠고 무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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