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1591년 겨울, 오사카성

by HistoryFile

1591년 겨울, 오사카성


대륙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오사카성의 대전,

두텁게 닫힌 문들 사이로도

그 냉기가 빨려 들어왔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상석에 앉자,

전각의 등록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의 손이 천천히 조선과 명나라가 붉게 덧칠된

지도 위에 내려앉았다.

얇은 입술에 비틀린 웃음이 흘렀다.


고요한 대전 안의 침묵을 깨며

모리 데루모토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관백 전하.. 북방 오슈가 순순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히데츠구의 전갈이옵니다.

그곳부터 정리하심이 어떨는지요.”


모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히데요시의 눈이 치켜 올라가며 번뜩였다.


“어리석은 말이다. 오슈는 한 줌의 먼지일 뿐,

내가 명을 정복한다면

다시 일본 안에서 칼을 들 수 있는 자 따위는

남지 않을 것이다.”


말끝이 냉혹하게 깎였으나,

히데요시는 곧 자신의 말끝에

다른 이름을 한숨처럼 내뱉었다.


“이에야스….”


그 이름이 오래 울릴 틈도 없이

고니시 유키나가가 나서서 말을 이었다.


“전하 그는 간토에 웅크렸습니다.

병사를 내놓지 않을 모양이니,

물자라도 빼내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히데요시가 질끈 눈을 감았다.

검은 속눈썹 사이로 불씨 같은 것이 번쩍였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내 손안에 있다.

그가 참전치 않는다고 하여 무엇이 두려운가?

이미 그는 칼끝을 꺾였다.”


읊조리듯 말하고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이에야스는 그가 무력으로 꺽지못한 상대였다.

다만 이에야스에게서 전쟁의 명분을 빼앗고,

그를 구석으로 몰이하는데 성공했을 뿐..

히데요시는 그의 딸과 어머니까지 내주며,

그를 주저앉혔다.


히데요시 다운 묘략이었지만,

그 표면에는 끝내 닦이지 않은

까끌한 거스러미가 남아 있었다.


돌아서던 히데요시의 발끝이

갑자기 마룻장 위에 멈춰 서자

전각의 공기가 쥐어 짜이듯 다시 곤두섰다.


히데요시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숨을 길게 삼켰다.

그리고는 치미는 분을 누르며 토해내듯 말했다.


“누가 감히 내 뜻을 거역하는가?

나는 천하를 넘어 천하를 거두려 한다.

이제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이묘는 존재할 수 없다.”


노기를 띤 그의 눈이 순식간에 벌겋게 물들었다.

가신들은 더욱 몸을 웅크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곧 대전 안이 다시 잠잠해졌다.


어떠한 의문도 두려움도 모두 삼켜 버린 채

서늘한 기운이 장막을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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