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성 (1)

다시,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3일, 부산진성 일본군 진영

by HistoryFile


다시, 1592년 임진년 음력 4월 13일, 부산진성 일본군 진영


“항복을… 거절했다고?”


고니시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말라 들러붙는 느낌.


그는 무의식적으로 십자 성호를 그었다.

곧 자신에게 지워질 죄의 무거움을 덜게 해달라는,

오래 몸에 밴 짧은 기도였다.


고니시는 강철 장갑의 매듭을 천천히 조였다.


“마음이 꺾일 것 같았으면 벌써 꺾였겠지.”


그의 눈은 성을 곁눈질하며 방파제 끝을 스쳤다.

새벽 햇살이 고지의 윤곽을 드러내고,

성 뒤편으로 솟은 능선의 그림자가 물결에 길게 떨어졌다.


전술 도식은 머릿속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먼저 높은 곳. 그 다음 사선 사격. 그리고 돌파.


“대장.”


쓰시마 출신의 노장 한 명이 낮게 말했다.


“조선군은 오늘 저 성벽에서 시간을 잡아끌 생각일 겁니다.”


“시간이라….”

고니시는 가볍게 웃었다.


“우리가 가장 아끼는 것이지.”

그는 다시 성호를 그었다.


곧 그는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냈다.

멀리서 나팔수의 음이 바람을 갈랐다.


“전쟁은 존중으로 끝나지 않는다.”


명령이 해안선으로 흘러갔다.

조총수들은 줄을 고치고,

화승에 침을 묻힌 다음 다시 말렸다.


창병들은 방패와 사다리를 점검하며,

발끝을 한 번 털었다.

드러누운 파도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노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대장, 처음에는 위협사격으로 기세를 꺾고,

사다리는 세 번째 북에—”


“아니다.”

고니시가 고개를 저었다.


“위협은 방금 충분했다.

기세를 꺾으려면 고지부터다.

위에서 내리쏘는 화력으로 흉벽을 비우게 하고,

그 순간에”


그는 손가락 두 개를 맞부딪쳤다.


“문이 아닌 벽을 공격한다.”


젊은 장수가 놀란 눈으로 물었다.


“벽을요?”


“문은 그들도 안다. 함정과 기름과 불이 기다리겠지.

우리가 고지를 눌러놓는 동안,

공성 반은 성의 가장 얕은 축대를 찾아 들어간다.

조총은 세 열, 번갈아 쏴라.

연기 속에서 적이 뭉치지 못하게.”


젊은 장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고니시는 성루 쪽을 흘끗 보았다.

그 위에서 누군가 깃발을 올리고 있었다.

짙은 적색.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바다 냄새와 화약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그는 허리께 작은 목 십자가를 한 번 만져보고서,

아주 조용히 말했다.


“사람은 마지막을 알 때 가장 뚜렷해진다.

저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지키는지—

지금만큼 명확했던 적이 없을 것이다.

그게 전장을 거칠게도 하고, 아름답게도 만든다.”


그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심해라.

저런 적은 무너지는 순간까지 사람을 데려간다.”


나팔이 세 번째 길게 울었다.


물안개가 갈라지고,

고지로 달려 오르는 돌격대가

사라락 소리를 내며 흙을 털었다.

조총의 도화선이 일제히 불꽃을 머금었다.


고니시는 마지막으로 성루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선 장수—이름을 아직 알지 못하는—의 윤곽이

햇빛 가장자리에 걸려 있었다.


“대장, 신호를.”


조총 대장이 고니시를 올려다보았다.

고니시는 숨을 고르고 손을 내렸다.


“사격.”

첫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속으로 짧게 속삭였다.


“당신들의 선택을 이해한다.

하지만 오늘—우리는 지나간다.”


그리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굉음이

바다와 성 사이의 공기를 갈랐다.

연기가 솟구치고,

메아리가 돌아오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폭음이 뒤따랐다.


파도는 그 굉음을 삼켰다가 다시 뱉어내며

해안에 부서졌다.


고니시는 눈은 연기 너머로 다시 성루를 응시했다.

여전히 흔들림 없이 서 있는 깃발 하나.

그는 아주 희미하게 미간을 좁혔다.


그때, 남문 쪽에서 들려오던 함성이 한 번 꺾였다.

해자 앞에 박아 둔 말뚝과 물러앉은 진흙 바닥이

병사들의 발을 잡아당기고,

방책 위로 쏟아지는 화살과 투석이

진열의 앞줄을 끊어냈다.


방패가 부서지고, 사다리가 뒤집혀 나뒹굴었다.

이어 비명소리들이 날카롭게 귓전을 때렸다.


선두가 멈칫하는 순간,

고니시는 짧게 턱짓했다.


“북으로—!”


나팔이 방향을 바꾸어 길게 울었다.

지휘 신호가 해안선을 따라 번개처럼 퍼졌다.

깃발수들이 깃을 기울이고,

부대가 휘어지며 북측 저지대로 흘렀다.


성 위에서도 움직임이 일었다.

청색의 색기가 좌우로 갈라지고,

흉벽 위 병사들이 한 줌씩 북쪽으로 내달렸다.


고니시는 그 흐름을 눈으로 쫓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빈 곳이 생긴다.”


고지로 보낸 경보대가 이미 능선에 닿아 있었다.

흙먼지가 발등 틈으로 스며드는 것도 잊은 채 오르던 자들이

숨을 한 번 고르고 줄을 맞췄다.


조총 대장이 손을 들었다 내리자,

도화선들이 귓불 가까이서 “치익” 소리를 냈다.


“꽝—! 꽝, 꽝!”

일제사격이 터져 나왔다.


납탄이 흉벽 틈새, 계단머리, 깃발수를 노렸다.

성 안쪽에 모여 있던 궁수 대열이 흩어졌고,

화살 몇 다발이 허공으로 날았다.


사격이 잇달았다.

내리쏘는 각도, 일정한 박자, 서로 엇물리는 세 열의 교대—

연기가 걷히면 또 다른 연기가 그 자리를 메웠다.


고니시는 손을 들어 사선(斜線) 사격을 더 넓히게 했다.

공격 각도가 넓어질수록,

수비는 흉벽 어디에도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지금이다. 공성반—전진. 벽을 친다.”


창병과 방패수, 괭이와 갈고리를 든 공병이

고지의 그늘을 타고 전개했다.


사다리가 어깨 위에서 철컥거리며 서로 부딪혔다.

그들은 성문이 아니라,

축대가 가장 얕아 보이는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성안에서는 끓는 물과 돌이 쏟아져 내려와

몇 개의 사다리를 낙엽처럼 떨궜지만,

위에서 퍼붓는 사격이 손을 흉벽에서 떼게 만들었다.


방패로 어깨를 감싼 병사가 팔꿈치로 사다리를 밀어 올리고,

뒤따르던 병사가 갈고리를 걸었다.

첫머리가 성벽 위로 넘어오는 데 성공하자,

소리는 금속에서 살로, 살에서 숨으로 바뀌었다.


흉벽 위에서 창과 도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깡, 깡” 하고 날카롭게 튀었다.


텅 비었던 모서리의 허공이,

잠깐 사이 사람의 체온으로 가득 찼다.


성안에서는 계속 버텼다.

활을 바꿔 쥔 이들이 벽 뒤에서 몸을 숙였다가,

빈틈을 찾아 “탁탁” 화살을 토했다.


돌을 들 힘이 남은 자들이

마지막으로 돌무더기를 던졌다.


그러나 고지에서 네 번째 사격이 내려왔다.

탄환이 흉벽의 새로 모인 병사들을 쓸어내듯 밀어냈다.


성문 앞,

해자 건너에서 남문 공격의 잔열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다가 꺼졌다.


이제 소리는 북쪽에만 있었다.

흉벽 위의 깃발이 흔들리다가, 다시 꼿꼿해졌다.


고니시는 눈썹을 낮추었다.

저 깃발을 세우는 순간마다, 그의 병사 몇이 더 누웠다.

그는 낮게 말했다.


“끝까지군. 그러면—우리도 끝까지.”


고지에서 다섯 번째 사격이 터졌고,

그 틈을 타 창병 선두가

흉벽 안쪽으로 완전히 풀려 들어왔다.

납탄이 막 지난 공간을 칼날이,

칼날이 지나간 틈을 발꿈치가 메웠다.


그리고 마침내,

북측 흉벽의 한 구간이 “퍽—“ 하고 꺼지 듯 내려앉았다.

부서진 돌과 흙 사이로

첫 줄의 창이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뒤로 방패, 그 뒤로 도검. 성내의 소리가 바뀌었다.

구령이 아니라, 짧은 숨, 막힌 기침, 비명 소리.


전투는 원거리에서 몸의 거리로 완전히 바뀌었다.

고니시는 다시 한 번 성루를 올려다보았다.

짙은 적색 깃발은—아직 있었다.

그는 아주 짧게 성호를 그었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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