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흘러가는 세상 속 나의 존재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가 울음을 터뜨리면 부모님의 발걸음이 서둘러 다가왔고, 내가 웃으면 주변은 나를 향해 따뜻하게 열리곤 했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온 세상이 나에게 반응하던 그 시절. 그때는 세상이라는 것이 당연히 나를 기준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다.
시간이 흘러 삶을 살아가다 보니 곧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내 감정이나 내 선택과는 무관하게, 세상 그 자체만의 속도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내가 기뻐하든, 슬퍼하든, 절망하든 아무런 관계없이, 거대하기만 한 세상은 단 한순간도 나를 위해 멈춤의 배려를 나눈 적이 없었다.
삶 속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찾아온다. 눈부심 기쁨이 밀려와 세상이 나를 축복해 주는 것 같은 날이 있는가 하면, 이유 모를 슬픔이 덮쳐와 세상이 끝끝내 등을 돌린 듯한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너무 작게 느껴져서 사라지고 싶을 때도 있고, 사소한 성취에도 가슴이 벅차오르며 온 세상이 내 편이 되어준 듯할 때도 있다. 그렇게 감정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결국 지금의 나를 빚어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는 세상이 흘러가는 전체의 흐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울어도 해는 뜨고, 내가 웃어도 계절은 바뀐다. 사람들의 하루는 나와 상관없이 흘러가고,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은 여전히 분주하게 돌아간다.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는 이 말은, 동시에 위안을 주기도 한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가는 공간에 불과하니, 나의 모든 고통과 불안이 세상을 흔들 정도로 거대한 것은 아니라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이 속에서는 또 하나의 역설이 담겨 있다.
세상이란 것은 내가 눈을 뜨고 바라보지 않는다면, 내가 마음으로 느끼지 않는다면 그저 의미 없는 풍경에 불과하다. 결국 세상은 '나를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외면하고 스스로를 가볍게 여긴다면, 세상이 아무리 찬란할지언정 어두운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대로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할 때 비로소 세상은 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삶은 날마다 작은 기회를 우리에게 건넨다. 오늘의 햇살, 스쳐가는 눈빛 하나, 내게 건네지는 말 한마디... 그 모든 순간은 나라는 존재가 있기에 빛을 발한다. 비록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내가 바라보는 시선 안에서 세상은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그래서 이제는 억지로 세상의 중심이 되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선 자리를 중심에 두려 한다. 세상이 무심한 듯 흘러가더라도, 나는 나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며 순간을 사랑하고자 한다. 그렇듯 내 삶을 채워갈 때, 세상 역시도 비록 무심하지만 동시에 따뜻해질 수 있다.
'나는 오늘 나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록, 내가 세상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세상은 분명 나를 통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하루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어떠한 마음으로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