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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_ 아집이 남기는 상처와 침묵

독단이라는 이름의 긴 그림자

by Evanesce

Dogmatic [ dɔːɡ|mætɪk ]

1. 독단적인, 독선적인

2. 자기 주장을 고집하는



세상은 언제부터인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더 크게 울리게 하려는 개개인만의 쪼개진 무대가 되어버렸다. 끊임없이 자신이 '옮음'을 외치고, 그 옮음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회의 흐름 속에서, 얼핏 우리는 점점 더 단단해지는 듯 보이지만, 실은 부서지기 쉬운 독단의 틀 속에 갇혀가고 있다.


'독단'. 이 단어가 품고 있는 차가운 울림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불통의 벽을 상징한다. 그 벽은 얼핏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처럼 느껴지지만, 동시에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감옥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모르는 척 살아간다. 타인의 고통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며, 나의 고집이 만들어낸 균열 앞에서조차 "내가 옳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은 단순한 선 두개가 아니다. 두 선이 포개져 균형을 이루듯, 인간이란 존재는 상호 작용하고, 교감하며, 서로를 의지한 채 기대어 있어야만 바로 설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어느 한 쪽이 스스로의 우월함만을 자랑하며 상대방을 무시한 채 뻣뻣하게 서 있기만 한다면,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기울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이 단순한 글자 속에서도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본질이 고요히 숨 쉬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장면을 그려 보자. 두 사람이 마주선 채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자기 힘만을 증명하기 위해 각자가 끊임없이 줄을 잡아당긴다면, 줄은 언젠가 팽팽히 버티다 못해 결국 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줄다리기가 단순한 힘겨루기의 수단이 아닌, 서로의 무게와 숨결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 순간 줄은 단절되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히 이어져 두 사람을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


독단적인 태도는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관계를 갉아먹고, 공동체의 숨을 막는 보이지 않는 병이다. 한 사람의 고집은 서로간의 대화의 문을 닫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때로는 그 그림자가 너무 짙어져, 우리는 서로를 보지 못한 채 각자의 외로움 속으로 흩어지고 만다.


여기서 무서운 것은, 그런 고집이 우리 스스로에게조차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 독단을 '자존심'이라 부르고, '신념'이라고 칭송하며, 심지어는 '정의'라는 단어로 끊임없는 정당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정직하게 그 모습을 들여다본다면, 그것은 타인을 위한 정의가 아닌 스스로를 위한 자기 확신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옳음을 고집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관계를 지켜나가고자 하는가."

"내가 세운 원칙의 틀은 타인을 위한 울타리인가, 나만을 가두고 있는 성벽인가."



자신을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불편하고, 내재된 자존심을 흔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서서히 부드러워지고, 고립 대신 연결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묻고 또 묻는 순간으로부터, 비로소 우리는 고집의 질긴 껍질을 조금씩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독단적인 태도가 때로는 견고해 보일지라도, 어쩌면 가장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성질이 내재되어 있다. 그 반면에, 부드러움은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오래 버티는 힘을 갖는다. 나무가 폭풍 속에서 뿌리째 뽑혀나가지 않는 이유는 단단함 때문이 아니다. 바람에 맞서지 않고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유연함 덕분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독단을 내려놓고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히 설 수 있다. 고집의 벽을 허물고서 서로에게 기대어 설 수 있는 순간, 관계는 다시 살아 숨 쉬게 된다.


고집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다. 그리고 때로는 더 큰 가치의 다른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을 나만의 옳음이 아닌, 함께 기대어 설 수 있는 우리의 자리인 것이다.


나는 오늘, 독단의 벽을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부드러움의 다리를 놓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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