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시선에 갇힌 나를 돌아보다
어릴 적 기억을 돌이켜보면,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의 연속이었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며 자유롭기만 해야 할 때조차 창가 구석에서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지켜보고 있는 그 눈은 친절하지 않았다. 때로는 평가의 시선이었고, 때로는 조롱의 눈총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할 때면, 무대 위에 홀로 선 배우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말 한마디, 몸짓 하나, 호흡 한 번까지도 누군가의 마음속 눈으로 걸러지는 기분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시선을 보내는 이들을 미워했다.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마음과 선택을 내 뜻과 무관하게 틀어 맞추려는 사람들.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이 아닌 통제와 속박의 욕망으로 번득였다.
내 숨 한 번, 내 걸음 하나까지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으려는 집착의 실상은,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겉포장에 감싸져 있지만 결국 자유를 옥죄는 속박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깨달을 수 있었다. 그 구속과 감시가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것은 외부의 눈길뿐 아니라 내 안으로 스며들어버린 자기 검열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언제나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은 행동을 멈추게 하였고, 나 자신을 점점 작게 만들었다.
하고 싶은 말, 하고 싶은 행동, 선택하고 싶은 길마저도 숨기고 거르는 날이 많아지며, 자존감은 점차 서서히 깎여 나갔고, 작은 실패에도 스스로를 탓하며 삶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왜 나를 자유롭게 두지 않는가', '왜 내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가'라는 화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타올랐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지치게 했다.
이렇듯 한 번 감시의 경험을 겪게 되면, 주변의 모든 시선들이 나를 향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보임이 두려워지고, 비춰짐이 괴로움으로 남게 되어 결국 나를 더욱 숨기게 된다. 위축된 채 움츠러든 마음을 다시 펼쳐 보이기까지는 한없이 많은 노력이 필요할 테고,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요소들이 찾아와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지금도 그 시절이 떠오른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받던 숨 막히는 시선, 교실에서 발표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의 긴장, 모든 이의 기대 속에서 스스로를 놓치던 순간들. 그 구속의 눈길은 비단 외부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스며든 감시와 자기 검열에 의한 나 자신에 대한 자체적 억압의 시선도 함께였다.
이런 감시와 구속의 심리는 아이러니하다. 상대를 통제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결국 자신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감시받는 나는 무기력해지고, 감시하는 이 또한 끝없는 불안을 달래려 끊임없이 관찰을 이어간다. 서로가 서로를 옥죄는 셈이다. 그러한 굴레 속에서 나는 나대로, 상대는 상대대로 끝이 없는 의심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은 채 계속된다.
오늘날 감시와 구속은 다양한 얼굴로 우리의 주변을 에워싼다. SNS 댓글, 직장 평가, 가족의 기대, 심지어 자기 자신 안의 완벽주의적 시선까지. 언제나 누군가의 눈앞에 존재하며, 그 눈을 의식한 우리는 삶의 일부 내지는 전부를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금 떨어져 바라본다면, 감시와 구속은 우리를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외부의 시선일 뿐, 우리의 내면과 자유까지 빼앗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속박 속에서 무력감을 느낄 때, 우리는 남의 시선 속에서 남이 정해주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안의 친절한 시선, 나를 이해하고 지켜주는 마음의 눈을 회복한다면, 비로소 나를 속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오늘도 조용히 내 안의 시선을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세상의 모든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더라도, 내 마음만은 자유로워야 한다. 나의 모든 선택을 스스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일만이 감시와 구속, 구속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삶을 되찾는 첫걸음이다.
감시는 외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구속과 속박의 마음, 분노와 원망마저 우리 안에 있다. 하지만 그 굴레를 깨고, 자유를 되찾는 열쇠 또한 우리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