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든 나무에 붓는 물, 방향을 잃은 착실함은 아닌지
Steadfast, 즉 변하지 않는 착실함과 성실함은 마치 오래된 돌기둥처럼 우리의 삶을 지탱해 왔다. 씨앗이 흙 속에서 긴 어둠을 견디고 마침내 싹을 틔우듯, 성실은 때로 아무런 빛이 비치지 않는 자리에서도 우리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곤 한다. 매일의 꾸준한 작은 걸음들이 모여 하나의 길이 되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을 신뢰하게 된다.
그러나 돌기둥이 아무리 단단할지라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땅 위에 그 기둥을 세워 건물을 짓는 고집을 부린다면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 억척스럽게, 맹목적으로 버텨나가는 그 'Steadfast'는 나를 해치고, 결국 닳아 없어지게 한다. 이미 시든 나무에 계속 물을 주듯, 돌아오지 않을 지나간 계절을 기다리듯, 방향을 잃은 성실은 희망이 아닌 '굴레'가 되어 버린다.
세월은 늘 흐르며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하고, 변하지 않은 우리의 표면적인 모습을 보며 안도를 느낀다. 하지만 그 세월의 흐름을 붙잡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를 과거에 묶어두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과거에 속박된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Steadfast'는 흐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닌, 흐름 속에서도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는 태도이자, 새로운 빛을 밝히는 길이다.
사실, 역사의 전환점들도 늘 이와 같은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서도 안전한 울타리 밖으로 차분히 한 발을 내디뎠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낡은 성실을 버리고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갔을 것이다. 그러한 용기가 세상을 조금 더 넓고 낯설게, 그러나 풍요롭게 바꾸어 올 수 있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고통은 종종 그 변화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Steadfast'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고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자 원동력이 된다.
진정한 의미의 'Steadfast'는 멈추어 서 있기만 하는 고집이 아니라, 고통을 넘어 새 길을 찾는 유연한 성실이다. 때로는 뿌리처럼 깊이 박혀 버티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람처럼 흘러갈 줄 알며, 그 사이에서 자신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Steadfast'의 가장 아름다운, 이상적인 형태일 것이다.
결국 'Steadfast'는 단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미덕이 아니라, 삶과 더불어 끊임없이 조율되는 움직임이다. 돌처럼 무거운 고집과, 물처럼 흐르는 자유 사이에서 끊임없이 조율되는 삶의 호흡이자, 버텨야 할 때와 바꾸어야 할 때를 분별하며, 때로는 흔들림을 이겨내는 단단함이다. 그 양극을 오가는 흔들림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균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조금 더 깊고 넓게, 더욱 단단하게 하여 앞으로의 삶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