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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_ 조화의 흔들림 속에서

인생이라는 음악이 우리를 만들어가는 방식

by Evanesce

Melodious [ məloʊdiəs ]

1. 듣기 좋은, 음악 같은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한 편의 교향곡과도 같게 느껴진다. 어느 악장이 시작될지 예고도 없이 흐르고, 어떤 부분에서는 조용한 현악기의 선율처럼 부드럽게 이어지다가도, 또 어느 순간에는 대지를 울리는 북소리처럼 요란한 소음 속으로 던져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소리들이 모여 결국엔 하나의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불협화음 속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생이 음악과 같다는 것은, 완벽한 조화로움 속에 듣기 좋은 것만이 펼쳐진다는 뜻이라기보다는, 삶의 소리가 서로 다른 리듬과 감정으로 부딪히면서도 결국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아침의 햇살이 유리창을 통과해 방 안으로 스며들 때, 현악기의 가벼운 프렐류드처럼 하루의 서두가 시작된다. 그러고는 일상의 작은 장면의 순간들이 멜로디가 되어 나를 감싸온다. 길가의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나, 지하철 안에서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문득 들려오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음색으로 울리며 하나의 삶의 곡선을 만들어 간다.


이렇듯 소리 없이 흐르는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도 충분히 멜로디는 살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순간이 조화롭지만은 않다. 때로는 음이 삐걱거리고, 박자를 놓치고, 뜻하지 않은 '삑사리'가 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을 찢어놓고, 믿었던 일이 무너져 내리며, 준비하지 못한 무언가가 찾아올 때, 그 불협화음은 참을 수 없을 만큼 거칠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교향곡은 그조차도 악보 위에 기록한다. 슬픔과 고통은 단지 조용히 흐르는 베이스 음처럼, 전체 선율을 더 깊고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이다. 우리가 겪는 상실과 아픔은 결코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악장을 준비하는 쉼표에 불과하다.


기쁨의 순간에도 그 선율은 다르지 않다. 가까운 이와의 웃음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처음 잡아보던 날의 떨림 속에서, 오랜 노력 끝에 무언가를 이루어냈을 때의 그 진한 환희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또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낸다. 음악과도 같은 삶이란 바로 그런 잔향을 느낄 줄 아는 태도일지 모른다. 완벽히 조율된 삶이 아니라, 어긋난 음과 음 사이에서도 울림을 찾아내는 감수성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또 어떤 날에는 세상의 모든 소리가 불협화음처럼 들린다. 관계가 엇나가고, 마음이 어딘가 끊어진 듯한 날에는 마치 음정이 맞지 않는 피아노처럼 내 주변이 모두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어딘가에서는 조용히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다.


창문 밖으로 들려오는 빗방울 소리,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사각거림, 누군가의 따뜻한 "괜찮아"라는 말 한마디에서 다시 리듬이 생겨난다. 인생의 악보는 우리가 선택하지 않아도 계속해서 흘러가고,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조율하며 살아간다.


그러니 인생이라는 이름의 교향곡 안에는 실패도, 후회도, 그리고 눈물도 포함되어야 한다. 때로는 그 음정 하나가 너무 거칠고 불안정해서 지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야말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결정적 악장이 되어 있곤 한다.


상처가 남았다고 해서 그 음악이 멈춘 것이 아니다.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랑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때의 고통이 새로운 선율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조화와 불협, 고요와 소란을 넘나드는 멜로디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Melodious'한 삶의 의미는 단순히 소리가 아름답다는 것이 아니다. 삶을 음악처럼 살아내는 감각이란 불완전함 속에서도 조화와 울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인생의 교향곡은 언제나 연주 중이고,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들려오는 이 순간의 선율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멜로디를 발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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