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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_ 마음이 기울어지는 방향

서로 다른 마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순간

by Evanesce

Inclination [ ɪnklɪˈneɪʃn ]

1. (~하려는) 의향[뜻], 성향

2. ~하는 경향

3. 경사(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을 향해 쉽게 열리고, 어떤 이는 자기 자신을 단단히 감춘 채 안쪽으로 물러서곤 한다. 누군가는 감정에 빠른 반응을 보이고, 누군가는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움직일 수 있기도 하다. 그 기울기의 각도는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말투나 몸의 자세, 시선이 머무는 위치에서 자연스레 드러난다.


그것은 성격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섬세하고, 태도라 부르기에는 너무 깊은 층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성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의 하루는 그 성향의 기울기의 변화로 이루어진다. 혼자 있을 때에는 마음이 안쪽으로 모인다. 조용한 방 안에서 눈빛이 차분해지고 움직임이 느려지며, 자신만을 향한 감각이 또렷하게 두드러진다.


그러다 사회의 장 속으로 들어가면 다시금 바깥을 향한다. 말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몸의 각도를 세우며, 내 현재의 위치를 고려한 채 서로 간의 관계의 거리를 감각적으로 재고서 행동에 옮긴다.


가까운 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또 다른 모습의 성향이 드러난다. 긴장이 풀리고, 표정과 목소리가 부드럽게 변하는 것처럼, 이렇듯 마음의 성향은 끊임없이 교차하며 하루를 만들어간다.


성향은 마음의 기울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마음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움직인다. 그 차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가진 리듬의 파동과 같다. 누군가의 리듬은 느리고, 누군가의 리듬은 바람처럼 가볍다. 그 다양함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마주하며 알아보게 된다.


그러던 와중, 가끔은 서로의 다른 마음의 방향이 이상하리만큼 나란히 흐를 때가 있다. 말이 아닌, 생각의 결로써 닮아 있는 순간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시선이 비슷하게 머물거나, 누군가는 말하지 않아도 같은 문장을 떠올리고 있을 때, 어떤 풍경을 마주했을 때 두 사람 모두 설명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웃을 때. 그럴 때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경계가 아주 미세하게 포개지는 것을 느낀다. 논리나 취향을 넘어선 감각, 존재의 리듬이 순간적으로 겹쳐지는 일종의 공명이다.


그 공명은 이후에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천천히 스며들어,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더 깊어진다. 서로의 마음은 그 순간 이후에도 같은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울림이 두 사람의 내면에서 잔잔하게 이어지며, 서로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도 미묘한 닮음이 생긴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 한때 같은 온도를 나누며 남겨진 미세한 진동이다. 그 진동은 시간이 지나도 다른 형태로 자라나, 사람의 태도와 마음의 결을 조금씩 닮아가게 만든다.


세상은 수많은 마음의 방향, 즉 성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누구도 완전히 곧게 서있지 않고, 누구도 완전히 같은 쪽으로 기울지는 않는다. 모두가 약간은 기울어진 상태로 서로를 스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다 아주 드물게,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같은 쪽으로 기울어진다. 누군가의 모습이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 겹쳐지고 그 겹침 속에서 조용한 온기가 피어난다. 계산할 수 없는 종류의 기적이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이 같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의 존재는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워진다. 그 순간이 지나도 울림은 남고, 그 울림은 다시 하루를 부드럽게 밀어 올린다.


우리는 모두 아마 그런 순간을 통해, 조용히 앞으로 기울어가며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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