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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_ 타오르는 온도의 기억

오래도록 지펴지는 마음에 대하

by Evanesce

Firewood [ faɪərwʊd ]

1. 장작


불은 언제나 조용한 자리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손끝, 한 줄기 바람, 그리고 아주 작은 결심 하나. 그 미세한 움직임이 장작을 덮고, 시간이 지나며 불빛은 조금씩 모양을 갖춘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은 금세 사라지지만, 서서히 타는 불은 긴 시간을 건너며 자신을 남긴다. 그렇듯 장작은 스스로를 태워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남기는 존재다.


뜨겁게 타오르지 않아도 좋다. 잠시 손을 녹일 만큼의 열로, 오래도록 머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마음은 거센 불길처럼 즉각적으로 타오르지만, 어떤 마음은 불씨처럼 조용히 남아 천천히 번져간다. 한순간의 열정보다 은은한 지속을, 소리를 내지 않고도 공간을 덥히는 따뜻함을 나는 좋아한다. 그런 마음은 결코 눈에 띄지 않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도 쉽게 식지 않는다. 불이 타는 동안 장작이 소리를 내지 않듯, 그 마음 역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 누군가를 향한 강렬한 표현이 아닌, 그저 곁에 남아 주는 방식으로써 존재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를 위해 타오르면서도, 그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뜨겁게 데워진 불빛 뒤에서, 어쩌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자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타오르는 것. 희생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서로에게 닿아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말보다 온도가 먼저 닿는 순간이 있고, 그 온도가 이어지는 동안 관계는 조용히 숨을 쉰다. 뜨겁지 않아도 괜찮다. 한 사람의 하루가 조금 덜 추울 수만 있다면, 그 온도는 이미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장작은 불길이 아니라 잔열로써 기억된다. 눈부신 빛이 사라졌을지라도, 남은 온돈은 공기 속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식는다. 그 잔열은 사람의 마음에 닿아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다시 다른 이의 불씨가 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시간을 데워주며 살아간다.


한 사람의 다정한 말 한마디, 이유 없는 안부, 혹은 오래된 침묵조차도 모두 불씨의 형태로 남는다. 거창한 위로가 아니라, 아주 작은 온도로 이루어진 위안의 연쇄이다.


장작이 태운 불이 남기는 온도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의 냄새가 되어 공간에 스며들고, 지속적으로 느껴질 만큼 오래 머문다. 장작의 온도는 단지 따뜻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감정의 잔향이다.


나는 그런 온도를 밑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데워주는 것은 거대한 불꽃이 아니라 오래도록 타오르는 장작의 불빛 하나라고. 그 불빛이 작을수록 더 깊고, 그 지속이 느릴수록 더 진하다. 그래서 그 온도를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누군가를 애써 진하게 밝히려 하기보다, 그 곁을 은은하게 덥혀주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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