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닮았을까?

엄마는 잎싹이를, 나는 초록이를 닮았다.

by 내곁의바람

마당을 나온 암탉을 다시 보았다.

처음 친구와 영화관에 가서 봤던 작품이지만, 초등학생 때 책으로 접해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영상미가 아름다웠던 것이 기억나서, 이번엔 집에서 다시 틀어보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에서 살다가 우연찮은 기회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암탉의 이야기이다.

엄마가 되고 싶었던 암탉 잎싹이는 늘 양계장에서 알을 뺏겼다. 그러다 부모를 잃은 오리 알을 품게 되고 늪으로 가 새끼오리를 키우게 된다.

새끼오리의 이름은 초록이, 정체는 청둥오리이다.


어릴 때는 초록이가 잎싹이에게 대드는 장면이 슬펐다. 왜 자신은 가족이면서도 엄마와 생김새가 다르냐며 반항할 때 목소리가 내가 엄마에게 대들 때와 겹쳐서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철새였던 초록이는 늪을 떠나게 된다.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다는 말을 하며 초록이가 눈물을 흘리자, 그때 잎싹이는 말한다.


난 괜찮아, 아주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거든.
내가 만약 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기 머물지 않을 거야. 하고 싶은 걸 해야지.
초록아, 얼른 가서 넓은 세상을 만나봐.


초록이는 겨울이 되어 돌아올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하고, 잎싹은 그러겠다고 한다.

다녀와서 세상에 대해 들려달라며.


그 장면을 보고 펑펑 울었다.

날아오르는 초록이를 바라보던 잎싹이의 눈빛. 그곳에 서려있던 사랑과 응원의 눈길이 느껴졌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한 뒤의 일이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기숙사에 돌아와선 양말만 겨우 벗어두고 잠옷만 갈아입은 채 쓰러지듯 잠드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다 보니 시간이 없어 본가에 갈 수가 없었다.


이미 엄마 곁을 떨어져 나와 대학교 기숙사에 산 적이 있지만, 본가에 갈 수 없을 만큼 바쁜 것은 처음이었다.

원래는 2주에 한 번은 부모님을 보러 갔었지만, 그게 사치로 느껴졌다.

죄책감이 일었다.


"이번 주는 못 갈 것 같아, 월요일에 시험이 있어."


문자를 보내니, 엄마가 답장이 왔다.


"집에는 시간 되면 오면 되지. 신경 쓰지 마. 미안해하지 말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집에 가지 못하더라도 심란하지 않았다.

내가 한 번씩 집에 돌아갈 때, 엄마는 푸짐한 밥상과 깨끗한 침구를 깔아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품으로 돌아가 잘 먹고, 잘 쉬고 나면 다시 일상을 달릴 수 있었다.


엄마는 내가 결혼해도 근처에 살고 싶다고 얘기하지만, 내가 꿈을 향해 나아갈 때만큼은 날 내버려 두었다.

나도 할 수 있을 때 가장 멀리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꾸준히 노력할 수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잎싹이를 닮았다.

초록이가 하늘로 비상할 때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눈빛마저도.


가족센터에서 부모와 자식의 독립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 있다.

부모는 태생적으로 자식을 독립시키기 어려운 존재라고 했다.

그래서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 인간으로 독립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멀리 날아가더라도 언제나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독립은 혼자 우뚝 서는 일인 줄 알았는데,

나에게는 땅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일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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