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기구 하나 타지 못한 어린이날, 그래도 행복한 기억
엄마가 말했다.
내게 동생이 생겼다고.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엄마의 뱃속에 내 동생이 있단다.
고작 세 살이었던 나는 동생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해 5월의 어린이날을 앞두고 부모님이 말했다.
"올해 어린이날은 놀이동산에 못 갈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가 임신 초기였으니 조심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큰 배신감과 억울함을 느꼈다.
내가 왜 매번 가던 놀이동산에 가지 못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떼를 썼다.
놀이동산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꼭 가야만 한다고.
날 쳐다보던 아빠가 말했다.
"그럼 엄마는 집에서 쉬고 우리끼리 가자."
그렇게 아빠랑 둘이서 어린이날에 놀이동산으로 향했다.
5월 5일의 그곳은 정말 사람이 미어터졌다.
주차할 곳이 없었다. 목적지로부터 꽤 먼 곳에 차를 겨우 대고, 아빠랑 끝도 없는 오르막길을 올랐다.
도착한 놀이동산에서는 놀이기구를 하나도 못 탔다. 대기줄이 끝도 없이 길어서 기다리기만 하다 시간이 끝났다.
그러고 보면 놀이동산에 왔을 때 엄마와 아빠는 2인 1조로 작전수행을 했다.
작전명은 "자식들 놀이기구 태우기"
엄마가 우리와 놀이기구를 타면, 아빠는 다음에 탈 놀이기구에 줄을 선다.
그것의 무한반복이 그곳에서의 유일한 생존방법이었다.
그러니 아빠 혼자서는 작전에 실패할 수밖에.
아빠는 그날 내게 처음으로 헬륨풍선을 사줬다.
놀이기구를 하나도 타지 못해서 실망했을까 걱정을 한 모양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헬륨풍선들이 서로 묶인 채 하늘을 향해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때 유행했던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 풍선을 골랐다.
나는 아빠와 놀이동산에 올 수 있었단 사실도 기뻤지만, 푸른 하늘 속에서 일렁이던 분홍색 풍선에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우릴 맞아주며 말했다.
"당신이 고생 많았어."
그리고 천장에 머리가 닿은 내 풍선을 보며 다 같이 웃었다.
빵빵했던 풍선은 시간이 지나자 바람이 빠져 점점 땅으로 가라앉았고, 종래에는 쭈그러져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내 마음속에는 늘 아빠와 둘이서 만들었던 행복한 기억이 하늘 높이 부풀어 있다.
마치 그날의 분홍색 풍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