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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도 포기한 동네가

포동포동 살이 오르고

by 무화
집이 어디예요?
전포동이요.
아 그니까 서면 옆에 전포동. 전두환이 포기한 동네. 허헛
베리에이션으로 노포동도 있어요호호. 노태우가 포기한 동네.


말하자면,

내가 태어나 반백 년을 넘게 지박인으로 살아온 이 동네에 대한 자부심은커녕 질문을 받을 때마다 요상하게 비굴해지는 심정으로 늘어진 빤쭈마냥 찌글찌글 장황해진 대답을 내놓기 일쑤였었는데. 거 참

왜 난 전포동을 사랑하지 못했었을까. (앞으로의 이야기들은 회상의 회상의 회상이므로 난삽한 대과거들이 등장할 것이다. 지저분함 예고)

작금은 서면은 물론이거니와 문현동 언저리마저도 전포로 퉁쳐지는 알흠다운 마을이 되었는데. 왜 난 전포동이라는 텍스트를 볼 때마다 쓴 맛을 느낄까. 실은 알지만 아련해보기. 흐흐


엄마는 비가 오면 아빠에게 우산을 갖다 주라는(드리라는 그런 고상한 관계는 아닌지라)특명을 하달하곤 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는 지금의 전포카페거리의 연장선 끝에 있는 전포 놀이터시장 언저리였다. 미쉐린타이어의 전신 우성타이어. 그 이전 원풍타이어 공장. 3교대로 일하며 위장병을 달고 살던 거룩한 일꾼들의 일터. 지금은 위스키향과 처자들의 오홍홍홍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곳이지만 그 인근을 비롯하여 카페거리를 형성하고 있는 일대는 옛 대우자동차 부산공장이 있었던 곳이다.



대우자동차의 사원들은 그나마 새나라의 일꾼 이미지였다. 자매공장인 원풍타이어, 그 외의 부품 가게와 공구상가들. 그 쇠맛 나는 밥을 먹던 수많은 노동자들ㅡ이른바 하청ㅡ의 일개 구성원일 뿐이었던 아빠는 궁핍의 대명사였다. 궁핍은 여러 형태로 인간의 빛을 훔쳐 간다. 특히, 어린아이의 눈동자 속에 든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앗아가고 부끄러움이란 단어를 심어둔다.

그거였다. 내 전포동이 쓰디쓴 이유.



그의 근면함이 하락할 때마다 우리는 기기묘묘한 형태의 주택가를 전전했고 덕분에 내 유년은 집의 형태에 따른 종류별 에피소드들로 점철돼 있다. 이를테면 변소가 하나뿐이던 한 지붕 세 가족 셋방집에서 투인원으로 오줌 싸기. 오우 지쟈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

나는 그 육체의 가치를 폄하하고 폄훼했었다. 호구조사를 할 때마다 아빠의 직업칸에 회사원이라 쓰는 대신 노동자, 막노동 등으로 외려 강조하여 쓰며 호탕하게 웃었던 것도 같다. 부끄러움이란 걸 처음 느꼈었다.


전두환이 포기한 동네 전포동은 우범지대라는 울타리를 쳐두고 빈곤을 가둬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서면으로는 유흥과 환락이 똥천처럼 흘렀었다. 육체노동은 죄악이라는 뒤틀린 명제가 그것에 더해져 나의 전포동은 포동포동한 이름이 유명무실하게 바짝 쪼그라들었었다.

그러니까, 전포동은 내게 여러모로 부끄러움을 주는 텍스트였던 것.


1980년대 각종 반정부 민주화 시위의 주 장소가 서면ㅡ전포동ㅡ이었다. 데모크라시를 사회악으로 주입받던 시절. 노동과 데모, 술집, 공장.. 부정적인 기운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자랐던 나를 비롯한 우리들. 국민학교 운동장에서도 매캐한 냄새를 맡았고, 대통령 이름을 함부로 부르면 잡혀간다는 괴담을 소곤대며 두리번거리던 그 많던 우리들은 상당수가 여전히 전포동에서 살고 있다. 과거 노동자들의 아들딸들. 기실 그럴듯한 직업군에 속하지 못한 이가 많다는 얘기다.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들을 보는 씁쓸함.


젠트리피케이션의 초창기, 나는 퍽 긍정적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커피 볶는 향이 나는 게 좋았다 . 젊은이들이 지나간 거리를 훑고 다니며 떨어트린 물건들을 구경하는 토요일 아침 산책도 재미졌다. 우리들의 부정적 기운을 증발시켜 버리는 그 열기가 반가웠었다.

그런데 평생을 살아왔던 곳에서 쫓기듯 이곳을 떠나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붉게 흘러내리는 철거라는 텍스트를 볼 때마다 내 유년이 깡그리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심지어 그 유년은 짠내가 나다 못해 쩐내가 나는데도. 쓰다 못해 아린데도. 차암 씨운데도.(씹다는 쓰다의 부산 사투리)



끌끌 쯧쯧 혀를 찬다. 모기향 냄새가 점점 사라지고 그 거리를 채운 에어컨 필터 냄새가, 메리야쓰를 입고 합죽선을 흔드는 할배대신 전담을 물고 밤거리를 활보하는 헐벗은 처자들이 불편해진다. 이것도 시대정신인가?


대우버스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하면서 그와 동시에 공구 및 기계부품 가게들이 이전하고 그 자리에 소규모 카페나 음식점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전포카페거리를 이루고 있다. 2017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곳' 중 48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꼭 가봐야 할 이유 같은 거 대체 무엇?

터전을 닦고 살던 늙은 인간들이 더욱 누추한 곳으로 쫓기듯 사라져 가는 것을 보는 재미?

주택을 철거한 자리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며 거기 살던 쥐와 바퀴들이 당당하게 대낮의 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보는 놀라움?


이제 깡마른 노동자들이 범람했던 전포동을 타투와, 다운 펌을 한 머슬 노동자들이 채우고 있다. 그들이 만드는 음식, 특히 커피에 난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만 몸으로 행하는 노동의 가치를 승화시켜 폼나게 일하는 그들을 온기 있게 바라볼 작정이다. 전두환은 고사하고 전두환 할배라도 함부로 포기할 동네란 없는 것이다. 더불어, 나조차도 나의 유년을 포기하게 해선 안되는 것이다. 인간이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결국 해사하게 웃던 그 거리의 나일 것이므로.


나의 전포동은 이제 달콤한 처자들의 향기와 고소한 커피 향이 난다. 찐득한 라멘 국물들로 살이 오른다. 나는 매일매일 사라져 가는 옛 집들과 노인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아린 시절이 증발해 기쁘고도 슬프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비록 깡말랐다 해도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 되고 마는 시절을 앗아가는 대신 새로운 부사어를 주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동포동한 전포동.


생동하는 전포동이 되기를 바란다.

쫓기듯 사라져 간 노인들의 새로운 거처에 신선한 빛이 들길 원한다.


전포동 1호 아파트

아무튼. 전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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