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와 속도에 대한 고찰
바야흐로.
러닝의 시대다.
거룩하게 사냥감을 쫓는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라스베가스 st의 헐벗은 언니들이 출렁거리며, 꿀렁거리며, 경보하는 할줌마들과 함께 뽐내는 시절.
아름답다. 저마다의 기능적 감각으로 차려입은 러닝 복장엔 저마다의 근심과 염려와 한탄이 서려 있기 마련이므로 열띤 그 얼굴들에 숨은 사연들을 추리해 가며 내 발뒤꿈치에 붙은 찌질함들도 털어내야 했던 지난 여름밤들.
살 빼야 빨라진다, 그리고 부상 없다
이 당연하고도 무신경한 명언을 망각한 채 여름밤 속을 걸었다. 뛸 수 없는 몸이기에 그저 걸었다. 얹혀 있는 것들이 모래주머니처럼 하중을 가했고 나는 부상당했다. 동시에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실패라는 단어를 입속에서 굴리며 몇 번 울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걸었다. 걷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읽을 수도 없었다. 악몽으로 자다 깬 새벽에, 위경련으로 잠 못 드는 밤에... 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휘갈기고 메모했다. 정제되지 못한 꺼슬꺼슬한 단어들이 그 밤들을 떠다녔다.
오래된 습관이 은유가 되었고 해석되지 못한 은유는 썩은 관성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걷다 보면 몸의 사이클이 전면으로 나서며 정신의 사이클을 분절시킬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더 많은 잡념과 상념들이 실타래처럼 빠져나오기도 했다. 근육이 마비되다시피 해 걷기조차 포기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긴 밤이 엄습했다.
세계가 만들어 놓은 규칙, 또는 법칙들이 개개인에게 모두 들어맞지는 않는다. 나는 봉인하기보다는 자주 끌어내어 낡아버리게 할 요량으로 거의 강박적이었다.
허나 남은 건, 구멍.
그러고 보니 내겐 구멍이 있다.
심연이라고들 하지.
썩은 다리 위의 러너,
여덟 살이었던 나는 학교가 파하면 썩은 다리 위를 전력 질주했었다. 삐거덕거리며 일초라도 빨리 그녀에게 닿고 싶었었다. 엄마는 중앙 시장과 연결된 그 다리 위에서 현대판 다이소를 운영ㅡ실은 잡화상 난전ㅡ했었고 100점짜리 시험지를 굳이 굳이 손에 들고 팔랑거리며 나는 달려갔었다. 노점 옆에 엎드려 숙제를 했고ㅡ숙제 안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던 강박어린이ㅡ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엄마는 푸르뎅뎅한 판매용 신발 솔로 머리를 북북 빗겨주었었다. 햇빛은 따뜻했고, 머리는 개운했고, 똥천에서 나는 냄새는 꼬릿꼬릿했다.
행인들의 칭찬에 수줍어하며 잘난 척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 부끄럽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오직 충만함만이 존재했었다.
엄마의 사랑에, 빈자리에, 돌봄에 허기졌던 나는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구멍 속의 허기를 그곳의 빛과 냄새로라도 채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실상은 어쩌면 나의 이 구술과는 판이하게 다를지도 모른다. 그저 그렇게 방치된 한 명의 풀 죽은 강아지였을지도. 윤색된 추억은 한계가 없다.
무구했던 나는 구멍을 채우기 위해 다방면으로 광대짓을 하거나 코스프레 따위를 했었다. 어떻게든 구멍을 메우고 싶은 버려진 강아지의 하릴없는 구멍파기랄까. 블랙 유머라는 것의 정의를 알았더라면 그때의 꼬마는 대단히 흡족했겠지. 입꼬리는 내린 채 꺼칠한 목소리로 웃곤 했던 엄마는 종종 내게 코미디언을 하라고 했었다. 지금 내 인생은 코메디다. 엄마는
예언자다.
다리 위의 러너들도, 나도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
옆구리에, 혓바닥에, 뇌주름 속에 들어앉은 살찐 거짓들. 궤망ㅡ요즘 푹 빠진 단어ㅡ한 부조리들. 쓰레기인 줄 모르고 지나왔던 그 시간의 부산물들을.
대책 없이 공허해져 존재 자체를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해도 방향만은 잡아야 한다.
속도와 속력은 모두 물체의 빠르기를 나타내는 물리량이지만, 속도는 방향까지 포함한다.
그러니까.
버려야 나아갈 수 있다.
기억할 것,
살 빼야 빨라진다, 그리고 부상 없다
이 문장의 방점은 부상이 없다는 것에 찍혀 있다.
전포동과 경계에 있는 범일동과 문현동 인근의
‘동천 썩은 다리’는 과거 동천을 가로지르던 오래된 나무다리가 썩어가는 모습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현재는 다리가 철거되고 ‘무지개다리’로 불리는 산책로와 맛집 골목만 남아 있습니다.
흐린 날엔 여전히 구린내가 진동하지만
새들도, 물고기들도 간혹 찾아드는 신비로운 곳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