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에필로그
사람의 향기가 없는 길모퉁이에서 살찐 코기와 할아버지가 출현해 낮게
환호했다. 수줍을땐 볼우물이 패이는 부끄럼쟁이 남편은 만지고 싶은 마음만으로 바라보았는데 징징과 노여움을 밀어 올린 달큰한 반색의 목소리는.
안쓰다듬어주제?
쭈그리고 앉아 꾸덕꾸덕하게 덜 마른 후리스 같은 등을 한참 쓰다듬고
안녕히 가세요 압도적으로 깨끗한 안녕을 바라며 인사했다.
예에. 고마워요
노곤한 햇빛 같은 얇고 따끈한 목소리가 아즈라엘의 꼬리처럼 골목을 빠져나갔다.
잘 마른국수 가닥을 모올래 뜯어 먹고
거룩하게 고무줄 뛰기를 하고
돗자리에 누워 모기향 냄새를 킁킁대던 시절이
바스러져 간다.
산책로이자, 미술관이자, 상영관이자, 참회록.
마지막 한 줄은 지워버린 일기장같은 곳인 전포동의 골목을 걸으며 숨 쉬듯 떠오르는 유년의 조각과 지금의 나를 포개어 본다.
영국의 그라피티 아티스트 뱅크시 작품 중 '무지ignorance 라는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두려움 fear 이라는 불로 데우면 혐오hate 라는 액체가 추출되어 시험관 안으로 들어간다' 는 글이 있다.
전포동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두 개의 평행우주를 구축해 이미 지박령이 된 아비와 지박령이 될 어미의 세상을 증오와 혐오, 미움과 방관으로 즉, 그들 세상의 축도를 무지로 일축해버리고 싶지 않아 오래동안 들여다보았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 오래 숙고했다.
지금도 골똘하고.
We are all always connecting to love even be right now at this moment.
누군가의 낙서가 골목 시절을 정의해주었다.
아무튼, 전포동의 기획 의도는 명랑성을 가진 무슨무슨 '기' 류의 글이었습니다. 격변하는 젠틀리피케이션 속의 전포동을 구석구석 담아낸다!
하지만. 그 구석구석은 결국, 공간이 아닌 저의 내면이었습니다.
애초엔 이러했습니다.
말하자면 저의 유년을 《내재간은나뭇잎하나푸르게하지못하지만》
이라는 어머니 이야기가 가미된 다크 버전
《아무튼, 전포동 》
이라는 아버지 이야기가 섞인 라이트 버전 으로 나눈 셈이었죠. 허나, 계획(실은 애초에 제대로?된 계획도 없었습니다)대로 될 리 만무하죠.
무릇. 이야기란 흐름속에 있는 법.
근데 또 저리 나누고 보니 캐발랄하게 써보고 싶기도 하네요? 됐고!
그 동안 쿰쿰한 이야기 읽어주셔서 감사했어요.
좀 더 깊은 이야기와 좀 더 날리는 이야기를 더더더 써 볼 생각이었지만. 여기서 갈무리하는게 맞다 여깁니다.
어느 작가님께서 날숨이 흘러나오는 글 -좋은 글-이라 댓글을 남기셨어요.
그건 그것대로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글쎄요.
의미라는 게 과연 있다면요.
안녕
아무튼, 전포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