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t라는 동굴의 죄수
글쎄,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잡아당겼다 놓으면 철컹하고 문이 닫혔습니다. 감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했죠. 마른 잎을 끌고 가는 바람이 둔중하게 상승하다 내 손끝에서 멈추는 것처럼 소리는 매번 뾰족하게 끝을 맺었어요. 무언가 험한 것이 저 아래에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우리들은 심상하게 그 문을 열어 라면 봉지나 먹다 남은 양념이 덜 묻은 밥, 또는 빵꾸난 양말, 끝내 다 쓰지 못한 공책 따위를 밀어 넣기도 했어요. 아.. 500미리 유리 콜라병도요. 각각의 물체들이 음습한 냄새가 나는 관을 통과해 내려갈 때마다 나는 소리가 달랐습니다. 안착할 때 나는 소리는 더더욱이요. 질퍼덕한 소리가 날 때면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한 페이지를 재빠르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참 재미있었죠. 은밀하고 야릇하게.
가끔 내가 던진 것보다 먼저 무언가가 바닥에 ㅡ때론 액체일 수도 있을ㅡ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곤 했어요. 상상은 학원에 가지 않는 어린이들에겐 최고의 놀이잖습니까.
그 어두운 관을 미끄럼틀 타듯 통과해 바닥에 도착하는 소리. 뭐지.. 뭐였을까요.
어느 날 L의 투지로 아파트에 입성했습니다.
한 지붕 세 가족, 지하 단칸방, 2층집, 반지하, 다시 한 지붕 세 가족. 다시 지하..
무한 루프의 고리를 끊은 쾌거였죠. 당시 전포동의 유일한 아파트.
물당꾸에 물 받으려고 2시에는 무조건 내빼야 하는 설움도 없고.
변소 하나를 교대로 쓰느라 부엌 수챗 구녕에 난사하지 않아도 되고.
온갖 쓰레기가 모인 구석에서 들끓는 파리를 목격하지 않아도 되는.
그 이름도 거룩한 아 파 트 먼 트 .
언젠가부터 녀석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녀석과의 치기 어린 손장난이나 햇살아래 가르릉거리던 소리, 또 뭐죠? 깃털 같은 거 흔들고 노는 그런 장난. 그런 것도 해 본 기억이 없어요. 유달리 그 녀석에 대해선 기억이 없어요. 얄팍한 부채감이 한 방울 더해진 모종의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뭐 그런 거죠.
유일하게 기억나는 하나의 장면. (아. 실은 두 개의 장면이군요)
옷들이 마구잡이로 걸려 있던 스탠드 옷걸이와 L의 자개농 사이에 녀석이 누워있었어요. 마치 기지개를 켜듯 두 다리와 두 팔을 쭈욱 뻗은 채로. 우리들은 매우 난감했습니다. 한눈에 알아봤거든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녀석을 예의 그 문으로 데려갔죠. 두려웠습니다. 아주 많이요. L과 K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엔 너무나 긴 시간이었어요. 달리 다른 방도가 없었단 말입니다.
녀석을 수건으로 둘둘 말았어요. 풀어지지 않게 고무줄로 묶었습니다.
문을 여니 저 아래 깊숙한 곳에서 바람 소리가 올라왔어요. 침을 꼴깍 삼키고는 부식된 문의 안쪽에 올렸습니다. 안녕. 인사를 했던 것도 같습니다. 이번에는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이미 귀에서 윙윙- 맹렬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거든요.
친구들과 모여 119에 거짓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왜 있죠. 열쇠로 자물쇠를 풀어 버튼을 누르는 전화기.
ㅇㅇ아파트에 불났어요!
아파트에 입성하기 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앙큼한 짓을 했는지. 거 참.
전포동의 유일한 놀이터가 그 아파트에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살고 있었어요. 뒤통수에 대고 헬로미스터몽키라고 했습니다. 그가 돌아보며 화답해 주었어요.
시발, 나 원숭이 아니거등?
헬로미스터몽키 나는 그게 긴 인사인줄 알았습니다. 무구한 국민학생이었단 말입니다.
너무나도 무구해서 惡이 얼마나 명랑한지도 모르는.
놀이터의 모래밭에는 틈틈이 함정을 파두었습니다. 꽤나 훌륭한 모양새였습니다. 깜짝 놀라게 하고 싶었거든요. 쿠쿸
또 뭐가 있더라..아. 누군가 죽길 바란 적도 있어요. 죽인 적도 있습니다. CPR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뇨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K의 사형집행인이 되었습니다.
쓰레기더미 속에 파묻혀 있을 녀석.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1층으로 내려와 거대한 문을 열었습니다. 녀석을 찾아냈죠. 그 이후의 일은 생각나지 않아요. 어쩌면, 이 결말은 그저 윤색된 거짓이거나 바람, 혹은 켜켜이 쌓인 면죄부 덩어리의 형상화일지도요. 그것도 아니면 영원히 그 장면에서 멈추는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진짜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동굴의 죄수이고.
당신은 시뮬라크르를 보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걸 뭐라고 이름 붙여야 하냐고요.
" 진짜가 뭐지? 진짜를 어떻게 정의하나? 느낄 수 있는 것, 냄새 맡을 수 있는 것, 맛보고 볼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거라면 그럼 진짜란
고작해야 자네 뇌에 의해 해석된 전기적 신호들에 불과해." _ 모피어스 <매트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