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박인에서 지박령으로
k 씨는
여섯 중 가장 어리석었다.
가장 순박했고, 가장 단순했으며 가장 수줍었다. 가장 어둑했으며 가장 원초적이었다. 대단히도 가장 작은 야망을 품기도 하였으니 떠나야 했다. 금의환향 따위는 모르는, 다만 배고픔이 가장 슬픈 무구한 청년이었다.
k 씨는
떠올렸다.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공장에 취직한 그는 여전히 가장 순박했지만 대단히 가장 작은 욕망도 함께 무럭무럭 자라는 시절을 보냈다. 봉제선이 뜯어질 듯한 허벅지를 가진 p는 어리석고순박하고단순하고수줍은 k 씨에게 대단히 큰 욕망을 들끓게 했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좌절한 k 씨는 문 앞에 드러누웠다. 대단히 큰 욕망은 더욱 대단히 큰 배포를 발휘하게 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그 초인적 행보는 훗날 그의 아둔함을 칭할 때 두고두고 회자되곤 했다.
k 씨가
어떠한 사정으로 전포동의 지박인으로 살게 됐는지 아는 이는 유일하다. 그의 p는 늘 독특한 방식으로 서사를 창조할 줄 아는 매우 단독적인 구술자였으므로 이제는 전포동 지박령이 된 k 씨의 역사는 자주 변질됐다. 주로 k 씨의 무능함과 아둔함이 원인으로 꼽히곤 했는데, 그것을 전해 듣는 쪽은 의뭉스러운 p의 말이 흘러나오는 입술에 서린 오만함이 거슬릴 뿐. 진위정도는 중요하지 않은지 오래다. 변질의 변질의 변질을 거듭한 k 씨의 전포동 주둔기는 대략 이러하다.
어리석고순박하고단순하고수줍은 성정에다 게으르고 무능하기까지 했던
k 씨였으므로, 대단히 영특하고 아주 오만한 p는 늘 k 씨를 단도리하며 이곳저곳에 찔러 넣었다(고 전한다.)
k 씨는
전포동(옆 부전동), Cj의 모태인 제일제당공업에서 설탕을 만들었다. 힘들어서 그만두었다.
전포동, 미쉐린타이어의 전신인 원풍타이어에서 3교대로 타이어를 만들었다. 위장병에 시달리다
또 그만두었다.
바다, 원양 어선을 탔다.
멀미 때문에 한 달 만에
또또 그만두었다.
전리품은 말린 쥐치 몇 두름.
전포동 (아래 범일동), 철재 가공 공장에서 오래 버텼다. 괘법동으로 이전한 그곳에서 어느 날 멍하게 한 곳을 응시하다 쓰러진 k 씨는 불능자가 되었으므로 결국
또또또 그만두었다.
k 씨는
몇 년동안의 병원 생활을 하다 전포동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비틀비틀 계단 난간 참을 잡고 걸어 올라갔다. 조광덕이? 라고 매번 틀린 이름을 붙인 사위에게 자주 말하곤 했다. 다시 일해서 맛있는 걸 사주겠다고. 농으로 되받아치던 k 씨의 장녀 외엔 그 누구도 그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k 씨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어느 날 마치 포장되는 것과 유사한 상태로 자신의 집 계단을 내려왔다.
흔치 않은 죽음이었다.
사망진단서가 적힌 곳은 전포동, 어리석고순박하고단순하고수줍은 성정에다 게으르고 무능하기까지 했던 늙은 k 씨는 해외여행은커녕 제주도도 한 번 못 가본 채로 전포동 지박령이 되었다. 병원 생활을 하던 때, 뇌의 절반이 쪼그라든 채로도 늘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으므로 그건 그것대로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글쎄. 령이라는 게 과연 있다면.
k 씨의
장녀는 뒷 산의 나비를 보며,
아파트 앞의 피안화를 보며,
썩은 다리 위의 뻥튀기를 우물거리는 노인을 보며
k 씨를 떠올렸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어리석고순박하고단순하고수줍은 성정에다 게으르고 무능하기까지 했던
k 씨.
그의 장녀는 지혜롭고음흉하고복잡하고뻔뻔하게 살리라 궁리하고 있다. 그러나 k 씨의 삼 남매 중 k 씨를 가장 많이 닮아 대단히 어리석고, 동시에 무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