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생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숨은 걸까. 나는 술래일까. 엄마를 찾으면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왼쪽으로 젖혔던 고개를 다시 오른쪽으로. 딸아이가 와서 묻는다. 아빠 뭐 보는데?
엄마ㅡ
부채 하나 줐드만 너거 아빠 내애 저서 엄마 찾아쌌는다. 할머니가 어딨는데? 여기ㅡ 딸아이가 웃는다. 할머니 이제 밥 하러 갔나 본데? 목구멍이 콱 막혀온다. 쌀. 우리 독엔 늘 쌀알이 낮게 깔려 있는데. 바압ㅡ
금방 밥 먹고 또 저란다.
이상하네. 왜 이게 다 벗겨졌지?
할머니가 크고 뜨거운 가마솥 앞에 서서 펄펄 끓어오르는 수증기를 노려보고 계셨던 게 기억나. 이렇게 깍둑썰기한 감자를 밀가루 반죽에 휙 감아서 투하하셨는데, 그러니까 수제비 안에 감자가 들어있는 거야. 때를 기다리며 잠복하는 맹수 같은 그림이었달까. 할머니의 표정이랑 거뭇한 은비녀만 생각나. 맛? 맛보다 냄샌데 조선간장 특유의 쩐내 있지? 불내랑. 실상 수제비보다 짚단이 화르르 바스러지며 타는 그 냄새. 누군가의 생을 연장시켜 주는 그 냄새에 홀렸지. 난 연기 냄새가 좋아. 겨울 산에서 나는 차가운 연기 냄새가 진짜 좋아. 모기향은 말해 뭐 해. 그래서 담배를 좋아했나.
욕심부리느라 밥때가 지난 걸 몰랐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한참 전에 봤으니 이미 늦은 걸 지도 모른다. 피가 배어 나온 어깨를 대충 문지르고는 서둘러 대청마루에 엉덩이를 걸친다. 징그럽도록 왕성한 식욕을 가진 여섯이 먹기엔 턱없이 부족한 비빔밥. 비빔밥이라 부르기에도 어색한 모양새인 풀들이 뒤섞인 밥. 비빔풀. 굴러다니는 밥알들. 밥알. 밥. 달려들지 않으면 못 먹는 밥. 시발. 왜 내 몫은 남겨두지 않았냐고 입속에서만 굴리는 말. 수제비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 불을 때야겠다.
k.
그 뼛가루말입니다. 그거 내가 들고 와서 식탁 위에 두고 매일매일 쳐다보면서 얼마간은 안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미 안녕하지 못하지만 , 그 상태가 진짜 안녕한 상태일지도 모르지만. 그곳에 버려두듯 봉인시키는 건 너무 이른 느낌이었습니다. 난 심지어 너무 이르게 밥을 먹었습니다. 활활 불타오르는 동안 아주 맛있게. 무생채가 참 맛있네. 감탄하면서. 문득 저 가루를 먹는 부족도 있으려나 생각하면서. 부모가 죽으면 자식들이 부모를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서요? 구더기가 파먹는 것보다 그들이 먹는 게 더 낫지 않냐고 되물었다는 그 사람들 말예요. 원자의 상태로 돌아간 그 몸은, 그 물질은 어차피 내 옆에 부유할 테고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걸 먹기도 할 텐데, 그럼 그건 작정하고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나. 오도독오도독 무생채를 씹으며 나는 모니터 속의 숫자를 바라봤습니다. ....안되는 건가. 몸을 소생시키는 입은 정당한데, 상실과 애도를 나의 방식으로 상상하는 입은 이토록 불경스러운 건가 생각했습니다. 냄새조차 맡을 수 없는 이런 방식이 야속했달까요. 저는 불내를 좋아했습니다.
m.
그건 당신의 욕심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도할 기회를 줘야지요. 가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또 오겠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며 잠시 휘청일 시간을 줘야 합니다. 몸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을 텐데, 어디가 떨어져 나간 건지조차도 모르고 살 텐데. 떨어져 나간 그 부분이 은근슬쩍 달라붙게 할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평하게 상실을 채우는 겁니다. 꼭 들어맞진 않겠지만 말입니다.
g.
말하자면.
상실, 애도, 공허, 슬픔은 젊음이라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쪼그라들어 늙은 애도와 늙은 슬픔을 팍팍하게 내뱉곤 합니다. 수많은ㅡ지구로 한정 지을것도 없이ㅡ생명체만큼이나 많은 각각의 시간 위 사정들로 사랑을, 젊음을, 신체를, 기억을, 때로는 핸드폰과 리모콘을 상실합니다. 어느 누구 하나 같지 않다는 게 핵심입니다. 그렇게 상실해 가며, 쪼그라들며 가볍게 하늘에 가까워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신에게로. 나는 대기 중으로.
중요한 건.
가짜 냉소를 품은 위트인 겁니다.
쪼그라든 주머니는 흠_하고 숨을 쉬는 겁니다.
아빠, 내가 아빠 대신 다녀올게. 청포도나무랑, 펌프랑, 문간방이랑 대청마루가 잘 있는지 보고 올게. 수페는 그대론지, 빨래터는 어찌 됐는지. 쇠고기 국밥도 먹고 망개떡도 사 올게. 거기 무슨 산이랬지? 거기도 가볼게. 그 냄새도 나겠지? 사진 찍어올 테니까 보고. 다음에 꼭 가자.
알았지?
엄마를 본다. 손나팔을 풀었다 접었다 하며 말한다. 내 밥은 따로 챙겨뒀다고. 고구마줄기된장도 지져놨다고. 너를 보면 애가 씐다고. 서늘한 바람이 목덜미에 내려앉는다. 매미가 우는지 웃는지 모르겠다.
화장
간병 노동으로 꺼져가던 오상무의 생기는
화장 化粧한 젊은 여인의 관능이나
화장 火葬한 아내의 소멸이 아닌
화장품을 만드는 일에의 전념으로 발생될 것이다.
내가 제공하는 돌봄의 첫 번째 수여자가 나로 자각될 때, 타인의 화장 化粧(make up)이 가능해지는 역설.
영화 화장의 또 다른 제목은 REVIVRE
소생이다.
아무튼, 전포동은 내 아비에 대한 이야기다.
지긋지긋하게 그를 소생시키며 결국, 나는 나를 소생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