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다 우연히 한번쯤 다시 만나고싶어.
서하는 처음 그 신비로운 붕어빵 가게를 발견하고부터 그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
서하를 보자 점원은 겨울철 따뜻함을 가득 품은 호빵처럼 살짝 웃어주었다.
“어서오세요. 자주 오시네요. 오늘도 팥 붕어빵으로 드릴까요?”
“네 팥 붕어빵 2개 주세요.”
서하에겐 습관이 하나 생겼다. 이 붕어빵 가게를 발견하고, 주문은 무조건 팥 붕어빵으로 한다는 것이다.
한때 슈크림 붕어빵을 외치던 그에게 새로운 변화였고 새로운 습관이었다.
마치 전에 서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서하는 이 붕어빵 가게가 주는 따뜻함과 아늑함이 좋았다. 그리고 겨울에만 맡을 수 있는 특권인 붕어빵 냄새를 맘껏 맡을 수 있어 좋았고, 차가운 겨울 날씨를 피할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가 생긴 것 같아 좋았다.
붕어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면서 이 아지트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렸다.
누구보다 팥 붕어빵을 좋아하는 그 사람을.
서하의 아지트가 된 이 붕어빵 가게의 특징이 하나 있다면 겨울에만 영업한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져 따뜻한 붕어빵 생각이 나는 11월 오픈해, 봄의 햇살을 기다리며 모든 생명이 잠들어 있는 2월까지 영업을 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가기 위해 교복을 꺼내면, 이 신비로운 붕어빵 가게는 문을 닫는다.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잠깐이라도 따뜻한, 다음에 또 방문하고 싶은 아늑한 공간을 제공해준다.
어느덧 서하의 눈앞에 팥앙금이 가득 담긴 붕어빵 2개가 나왔다.
원래 서하의 계획은 집에 있는 맥주와 방금 막 구워져 따뜻하기보다 오히려 뜨거운 붕어빵을 호호 불며 자신만의 붕마카세를 즐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이 따뜻하고 아늑한 공간에서 붕어빵을 먹고 싶었다.
서하의 집도 붕어빵 가게 못지않게 따뜻하다고 할 수 있지만, 무언가 부족했다.
그 부족함을 이 공간에서 채우고 싶었다.
“사장님 오늘은 여기서 먹고 가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편히 있다가 가고 싶을 때쯤 가셔도 괜찮습니다.”
젊은 여자 점원은 웃으며 말하곤 서하가 편히 있을 수 있게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할 일을 하였다.
젊은 여자 점원의 배려는 별건 아니었지만 따뜻했다.
그 따뜻함은 서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잊고 지낸 무언가를 깨워주었다.
서하는 봉지에서 갓 구워진 뜨끈한 붕어빵을 호호 불며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원이 일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왔을 때도 느꼈지만, 어디선가 한번 마주친 느낌이었다.
어디였더라.
서하는 자신의 기억 속을 거슬러 올라가 봤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듯 천천히 생각해보고, 내리막길 내려가듯 빠르게 되짚어도 봤다. 하지만 정확히 기억나는 순간은 없었다.
오히려 지난 8년 동안 함께한 팥붕파이자 쌀국수와 뿌링클을 좋아하는 그녀가 떠올랐다.
“서영주 뱃속에는 붕어빵 팥하고, 쌀국수, 뿌링클만 가득할거야 킥킥.”
그 공간의 편안함이 좋았기에, 젊은 여자 점원이 있다는 것도 까먹고 서하는 혼잣말을 하며 웃었다.
그리고 뒤늦게 이 따뜻한 공간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곤 머쓱했다.
하지만 이 공간의 주인은 정작 서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마 그가 이 공간에서 편히 쉴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배려는 사소했지만, 그 사소함은 서하가 이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기에 충분했다.
서하는 문득 그녀가 궁금했다.
그 궁금함은 붕어빵 가게에서 붕어빵 주문 대신, 엉뚱하지만 진심이 담긴 질문이 되었다.
“저…. 저기, 사장님은 이곳에서 계속 붕어빵을 파신 건가요?”
그 엉뚱한 질문에 여자 점원은 당황 대신 웃음을 보였다.
“네. 자그마치. 30년 된 거 같아요.”
“삼..십..? 30년 이나요? 사장님이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진 않는데요.”
“그래요? 방금 그거 칭찬인가요. 칭찬이라면 감사해요.”
서하의 궁금증은 더 커져갔다. 서하의 궁금증에 그녀는 한결같이 살짝 웃기만 하였다.
“사장님은 마치 마법사 같아요. 어떤 비밀과 사연을 간직한. 마법사.”
“누구에게나 비밀과 사연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서하의 엉뚱한 질문에도 그녀는 태연했다. 너무 태연해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 같았다.
진짜 비밀을 간직한 마법사처럼. 그때였다.
마법사처럼 느껴지는 그녀에게서 ‘무슨 붕어빵으로 드릴까요’라는 말 대신 서하의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 날라왔다.
“손님에게도 남들에게 말하기 힘든 어떤 사연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질문은 날카로워서 서하가 2년 동안 잊고지냈던, 필사적으로 잊으려고 노력했던 영주와 헤어지던 그날이 생각났다.
연애 횟수로 약 8년째 되던 날이었다.
3000일을 앞두고,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나는 영주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생각하다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나중에 프로포즈 할거면 무조건 반짝이는거! 알지? 반짝이는거 아니기만 해봐!”
“반짝이는 거? 흐음……. 별이라도 따줘야하나 킥킥.”
“별? 별은 너무 멀잖아! 별 말고 반짝이는 거!”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지난 8년 동안 영주에게 반짝이는 선물을 준 적이 있던가 생각했다.
프로포즈는 아직 아니지만, 반짝이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들어간 금은방에서 나는 그녀에게 줄 반짝이는 선물을 샀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영주를 생각하며 그녀와의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회사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팀장님이었다.
계약처에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 회의를 당장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반짝이는 선물을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회사로 달려갔다.
그때의 나는 나로 인해 영주의 인내심이 얼마나 바닥이 났고, 그녀의 마음 보따리에 얼마나 많은 구멍이 생겼는지 몰랐었다.
그래서 2년이 지난 지금 가장 후회하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우리의 8주년을. 영주 혼자서 보내게 하였다.
나는 회사에 도착해서 급하게 영주에게 문자를 보냈다.
‘영주야 미안. 나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내가 늦게라도 갈게 미안해!’
나의 변명에 영주는 알겠다고 말했다.
아마 이번 8주년은 나에게 있어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몰랐다.
조금씩 균열이 생겨버린 우리의 관계를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나는 그 기회를 놓쳤고 우리의 연애는 끝을 향해 달려갔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영주는 내가 늦게라도 올 줄 알고, 레스토랑 마감 시간까지 혼자 있었다고 한다.
그때의 영주는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모든 일을 마치고 나는 달려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기를 바랬다.
주머니 속 반짝이는 것을 만지며 달려갔다.
혼자였을 그녀를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했을 때 영주는 울고 있었다.
이미 너무 많이 울었는지 그녀의 눈은 열리지 않는 군밤처럼 퉁퉁 부어있었고, 그녀의 옆엔 젖은 휴지들이 가득했다.
“흑흑…. 너 내가 오늘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우리 8주년이라고 8주년 이서하! 알기는 해?”
“흑 ……. 흑 …. 이서하 너는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왔어야 했어. 흑흑. 이제 진짜 끝이야! 이서하.”
“영주야 미안해. 내가 다 설명할게! 있잖아…. 회사에서…….”
“그만! 이제 그만해! 서하야. 벌써 2년이야. 회사 때문에 너가 그러는거. 내가 2년 동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알아?”
“이제 끝이야!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이서하!”
“이서하 너란 남자 지긋지긋해 헤어져!”
그 말과 함께 영주는 집을 나갔다.
조그맣지만 둘이어서 따뜻하고 아늑했던 우리의 보금자리엔 나 혼자만 남았다.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반짝이는 반지 케이스를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주저 앉았다.
그녀 혼자 외로웠을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나는 그녀의 외로움을 뒤늦게나마 느꼈다.
그리고 그녀가 울었던 그 자리에서 똑같이 울었다.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면 울었고, 너무 많이 울어 눈이 아픈지 눈을 뜨고 있는 시간이 버거웠다.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연차를 몰아서 썼다. 일주일 정도였나.
먹기 위해 산다고 영주한테 말한 나였지만, 어쩐지 음식 생각은 나지 않았다.
단지 이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들었다.
자는 동안은 영주 생각이 나지 않아 괴롭지 않았다.
눈을 뜨고 괴로우면 술을 마셨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영주 생각이 나 괴로웠다.
나의 하루는 계속 술과 잠의 반복이었다. 영주가 보고 싶었다.
얼마 후 대학 동기였던 지훈이의 발견으로 나는 그 동굴에서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야 이서하! 너 이러다 정말 죽어. 정신 차려! 일단 살아야지…. 살아야 영주를 붙잡든 이야기를 하든 할거 아니야!”
“지훈아. 나 살기 싫어. 영주는 나한테 전부였어, 영주 없는 세상은 더 이상 무의미해.”
“일단 살자 서하야. 내가 오늘 너 얘기 다 들어 줄게. 나가서 밥부터 먹자 너 지금 몰골이 말도 아니야.”
지훈이는 나를 데리고 해장국 집으로 데려갔다.
그때의 나를 살려준 지훈이는 지금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라 불린다.
그날 나는 낮부터 지훈이와 소주 6병을 마셨고 지훈이에게 영주라는 단어를 1000번 정도 언급했다.
그만큼 애절했다. 연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연락하려고 하면, 헤어지던 날 흐느껴 울던 영주가 떠올라 하지 못했다.
영주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지훈이에게 했다. 지훈이는 정말 멋있는 친구다.
그때의 폐인이자 취객이던 나의 이야기를 해장국 집 문을 닫을 때까지 들어주었다.
지금은 지훈이와 웃으며 얘기할 수 있는 그날의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이지 괴로웠다.
지훈이가 날 살린 그날부터 나는 살기 위해 노력했고, 살려면 8년의 기억을 잊어야 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영주와의 8년의 연애를 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기억이 이 붕어빵 가게에서는 자꾸 떠오른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프지 않다.
분명 아팠는데. 오히려 몽글몽글하다고 해야 하나.
날 아프게 했던 서영주 잘 지낼려나. 한 번쯤 인연이라면 붕어빵 사다 마주쳤으면 좋겠는데.
“맞아요. 8년 동안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어요. 너무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였는데, 이제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어요.”
이 공간의 따뜻함 때문일까. 아니면 마법사 같은 이 여자 점원의 능력 때문일까.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내 사연을 털어놨고, 이상하게 편안했다.
이 붕어빵 가게는 처음 왔을 때부터 따뜻했고, 그 따뜻함은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저 여자 점원 옆에 오래된 난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어디서 봤더라.
여자 점원은 나를 여전히 편하게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편안함은 마치 고향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해주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모든 사연을 털어놓게 되었다.
“손님이 팥 붕어빵만 사는 이유도 혹시 그 여성분과 관련이 있나요?”
“맞아요. 사실 저는 슈붕파에요. 슈크림 붕어빵만 먹었죠.”
처음에 너무 뜨거워 이제야 조금 따뜻하다고 말할 수 있는 2번째 붕어빵을 집어 먹으며 말했다.
“팥 붕어빵은 제 전 여자친구가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항상 슈크림 붕어빵 좀 먹어보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죠. 정말 팥 붕어빵에 대한 마음은 한결같은 친구였어요.”
“그래서 팥 붕어빵을 보면 그 친구가 생각나요. 처음엔 괴로워서 붕어빵을 피했었는데, 이상하게 여기서는 괜찮아요. 그래서 맘 놓고 그 친구와의 추억을 생각할 수 있어요.”
“손님이 그 친구분 많이 좋아하셨나봐요. 붕어빵 취향까지 바꿀 정도로.”
“사실 제 여자친구가 힘들 때 제가 같이 있지 못했어요. 그게 아직도 마음에 걸리고 미안해요. 그래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친구가 좋아했던 팥 붕어빵을 먹으며. 그 친구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젠가 그 친구를 만나게 된다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 그 친구에게 제대로 된 사과조차 아직 못했거든요. 곰이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었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겨울에 팥 붕어빵만 먹을 거예요.”
“어머 저희 팥 붕어빵이 쑥과 마늘 맛인가요?”
점원이 장난치듯 말했다.
“에이 오히려 반대에요. 너무 맛있어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그래서 100일 동안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점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자 속이 시원했다.
매일 밤 마시는 맥주의 첫입처럼 정말이지 시원했다.
“그 친구 다시 만났으면 좋겠는데. 어디서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요. 앞으로 만날 수나 있으려나.”
“손님 인연이 왜 인연인지 알아요?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기 때문이에요. 겨울철이 되면 돌아오는 붕어빵처럼 분명 다시 그분을 만나게 될 날이 올 거예요.”
여자 점원의 말에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둘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 울게 되면 이상할 걸 안다. 하지만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배려해주듯 점원은 묵묵히 붕어빵을 구웠다.
그리고 내 울음이 멈추자 붕어빵이 가득 든 봉지를 건넸다.
“손님의 사연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마법사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사장님 감사해요. 저 가끔 여기 와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괜찮을까요?”
“어휴… 붕어빵 장사를 하고 혼자서 얼마나 적적했는데요. 언제든 찾아와 주세요.”
한파 주의보였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그 여자의 정체는 뭘까.
나는 따뜻한 팥 붕어빵을 한입 베어 물고, 그녀의 정체를 추리했다.
정말 마법사일까.
아니면 나처럼 사연이 있는 사람일까.
뭐든 좋다. 나는 이 붕어빵 가게가 좋고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또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단골로서 이 따뜻한 공간에 대한 예의이고 사장님의 마음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와 근데 사장님 붕어빵 진짜 잘 구우신다. 영주 있었으면 벌써 다 먹었겠다.”
이제는 불러도 조금은 덜 아픈 오히려 더 부르고 싶은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른다.
“아 오늘은 붕마카세 안 먹으려고 했는데 이러면 맥주에 먹을 수밖에 없잖아!”
서하는 집에 있는 맥주를 생각하며 걸어갔다. 그의 발자국 위로 소복소복 눈이 내렸다.
인연은 돌고 돌아 만나게 된다고 했던가. 이 소복소복 쌓인 눈길을 누군가 방문하게 될 거다.
인연이기 때문에.
서하는 만나게 될 인연을 기다리며 2년 동안 그 가게를 찾았다.
그리고 겨울만 영업하는 그 신비로운 붕어빵 가게의 단골이 되었다.